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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방세린은 전에 남자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품고 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본처나 여자친구를 두고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하지만 하태원의 마음속에서 방세린은 여자친구이기는커녕 수많은 여자 중 하나에 불과했다. 오늘 밤 운성시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면서 화해로 일대의 교통상황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차가 심하게 막혀 모임 약속 시간 몇 분 늦게 도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하태원과 친구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태원 형, 약혼 축하해. 내가 술 한잔 올릴게.” “송씨 가문의 딸이 운성시에서도 알아주는 미인이라던데. 형은 정말 복도 많아.” “그래?” 누군가 음흉하게 웃으며 물었다. “방세린이랑 비교하면 어때?” “비교할 가치나 있어? 아무리 예뻐도 1년 동안 잤으면 질려. 즐기는 건 즐기는 거고 태원 형이 그걸 구분하지 못하진 않을 거야.” “이런 얘기는 여기서만 해. 방세린 귀에 들어가게 하지 말고.” 하태원이 그늘 가득한 얼굴로 경고했다. “왜냐하면... 아직 질리지 않았거든.” 폭소가 터져 나왔고 부잣집 도련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알겠다고 답했다. 하태원이 팔짱을 낀 채 나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깨끗하고 말도 참 잘 들어... 알아서 굴러들어왔는데 안 자면 손해잖아. 질리면 적당한 핑계를 찾아서 차버릴 거야.” 문밖, 방세린은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서서히 풀었다. 울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고 조용히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머릿속에 이 생각만 맴돌았다. 하태원과 이젠 끝이라는 생각. ... “세린아, 정말 유학 신청할 거야?” 방세린이 들고 있던 유학 신청서를 꽉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룸메이트는 너무 놀란 나머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외에 나가면 하태원 씨는 어떡하고? 널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잖아.” 방세린의 얼굴에 비웃음이 잠깐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정말 아쉬워할까?” “당연하지. 하태원 씨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저기 봐. 또 데리러 왔어. 어찌나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줄 알겠어.” 룸메이트는 방세린을 앞으로 살짝 밀고는 눈치 있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방세린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하태원을 바라봤다. 검은색 마이바흐에 기대어 서 있었는데 뛰어난 외모 때문에 수많은 여학생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하태원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시선은 계속 방세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다정하게 차 문을 열어주며 완벽한 신사의 모습을 보였다. “타, 세린아.”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태원의 시선을 따라 방세린에게 향하더니 저마다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모두가 하태원이 그녀에게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1년 전 하태원이 그녀를 위해 준비했던 불꽃놀이를 아직도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불꽃놀이에 적어도 수십억은 썼을걸? 그때 운성시의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강가에서 구경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하태원은 방세린의 미소와 바꿀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어.” 한 여학생이 가슴을 움켜쥔 채 반짝이는 두 눈으로 말했다. “나도 언제쯤 저렇게 완벽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방세린이 차에 타자 하태원은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매너손을 내밀었다. 아주 값비싼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사람들의 평가처럼 완벽한 남자였다. 만약 방세린이 어젯밤 그가 했던 말을 듣지 못했다면 그녀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태원이 검은색 벨벳 상자를 건네며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열어봐.” 방세린이 상자를 열자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찬란한 빛만 봐도 엄청 비싼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태원은 가까이 다가가 안전벨트를 매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마음에 들어?” 그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의 손길을 피하더니 대답 대신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물었다. “갑자기 웬 목걸이야?” 하태원이 핸들을 잡고 앞을 보면서 대답했다. “우연히 경매에 참여했었는데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 그는 방세린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고는 야릇한 말투로 말했다. “누가 계속 내 머릿속에서 걸어 다니래?” 방세린은 망설임 없이 손을 빼냈다. 손등에 남아있는 온기가 독사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야만 하태원의 앞에서 비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것 같았다. 방세린이 몰래 휴대폰 화면을 끈 그때 뉴스 화면이 스쳐 지나갔다. [하태원 대표 약혼녀와 함께 경매 참석,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천문학적인 가격의 다이아몬드를 낙찰받아.] ‘계속 내 생각만 한다고? 그럼 약혼녀랑 함께 있을 때도 내 생각을 한단 말이야?’ 낯선 번호로 또 다른 문자가 도착했다. [목걸이를 두 개 낙찰받았는데 하나는 내가 골랐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버린 쓰리기를 주워가서 기뻐?] “태원 씨.” “왜?” 하태원이 고개를 돌렸다. 단추 하나 풀어헤친 셔츠 깃 사이로 키스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 방세린은 울렁거리는 속을 가까스로 참으며 작은 상자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태원 씨만 선물을 준비한 게 아니라 나도 준비했어.” 하태원의 눈이 반짝이더니 바로 상자를 열려 했다. “뭔데?” 방세린은 그의 손을 잡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지금 열어보지 말고 한 달 뒤에 열어봐.” 놀랍게도 하태원은 움직임을 멈추고 짙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서프라이즈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 안에 담긴 건 하태원이 선물했던 커플링이었는데 하태원이 그녀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었다. 그 후로 그녀에게 수없이 많은 값비싼 물건들을 선물했지만 그녀는 이 커플링을 가장 좋아했다. 반지는 다른 물건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태원이 방세린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결심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에게 진작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반지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 다시 돌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게다가 하태원은 이렇게 말했었다. 방세린과는 그저 즐기는 사이일 뿐이라고. ‘한 달 뒤 이 반지를 보고 내가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 분명 기뻐하겠지? 이 정도면 서프라이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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