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5회

나도윤은 이소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고요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지나치게 차분했다. 그 안에는 원망도 불만도 심지어 기대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평온한 담담함이 오히려 나도윤의 속을 뒤집어놓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과 짜증스러움이 다시금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너, 정말 화 안 나?”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소은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봤다. “도윤 씨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었잖아. 내가 왜 화를 내?” 그 말에 나도윤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는 분명 명분이 있었고 나름대로는 정당한 이유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이성적이고 ‘착한 여자친구’처럼 굴수록 오히려 숨이 막히고 더 괴로웠다. 차라리 울고불고 매달리며 따지고 소리를 질러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의 앞에서 웃으며 조용히 이해해 주었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싸운 적 없는 ‘최고의 여자친구’처럼 행동했다. 바로 그 점이 그에게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요즘 회사 일 다 미뤄놨어. 며칠은 너 옆에 붙어서 간호하려고.” 그는 어색하게 입술을 움직였고 말끝이 흐려졌다. 몸을 일으켜 물이라도 따라주려던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나도윤의 어깨가 눈에 띄게 굳어졌다. 이소은 역시 그 소리를 들었지만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그는 몇 초간 망설이다가 결국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창가로 걸음을 옮겨 전화를 받았다. 무슨 말이 오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음 순간, 그의 얼굴빛이 확 달라졌고 그와 동시에 목소리도 한층 높아졌다. “한유라, 너 미쳤어? 그딴 놈이랑 호텔을 가? 어디야, 어느 호텔이야! 기다려! 내가 지금 당장 갈 테니까!” 전화를 끊은 그는 거침없이 돌아서며 이소은을 향해 말했다. “회사 쪽에 급한 일이 생겼어. 지금 당장 나가봐야 해. 금방 돌아올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외투를 낚아채 들고 병실을 나섰다. 쾅! 문은 무심하게 닫혔고 병실 안에는 다시 정적만이 내려앉았다. 이소은은 말없이 누운 채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고 그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건 예상대로였다. 전화벨이 울린 순간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한유라가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무도 익숙한 전개였기 때문이다. 한유라는 언제나 나도윤의 심장을 정확히 찔렀고 그는 그 자극에 휘청거리며 현재의 그녀를 내팽개친 채 또다시 그 여자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이소은은 조용히 침대 옆의 호출 버튼을 누르자 잠시 뒤 간호사가 들어왔다. 이소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저기... 보호자 대신 해줄 간병인 좀 부탁드릴게요. 제일 좋은 분으로요. 아, 그리고 제 핸드폰이 꺼졌어요. 충전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 후 며칠 동안 이소은은 스스로 간병인을 불러 조용히 요양에 전념했다. 나도윤에게서는 전화 한 통, 메시지 하나 오지 않았고 당연히 그는 병실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이소은 역시 그를 찾지 않았다. 그저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며 간병인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정도로 하루를 보냈다. 퇴원 당일, 햇살은 유난히도 좋았다. 이소은은 스스로 퇴원 수속을 마친 뒤,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안은 여전히 조용하고 어딘가 차가웠지만 그녀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담담하게 물건들을 정리했고 곧 다가올 해외 순회공연을 위한 준비에 천천히 들어갔다. 며칠 뒤, 서류 처리를 위해 외출한 날이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녀는 길가의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 들었다. 컵을 손에 쥔 채 천천히 걷던 중, 넓은 광장을 지나게 되었고 바로 그때 한 명의 젊은 여성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채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언니! 저희는 <도시의 기분>이라는 프로그램인데요. 발렌타인데이 특집 길거리 인터뷰 중이에요! 혹시 몇 가지 질문드려도 될까요?” 처음엔 정중히 거절하려다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 못 이겨 이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질문드릴게요! 언니는 이번 발렌타인데이, 남자친구분이랑 어떤 계획 있으세요? 특별한 이벤트나 기대하고 계신 거 있나요?” 마이크가 그녀의 입 앞까지 다가왔다. 이소은은 순간 멈칫했지만 곧 미소를 머금고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고도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요? 남자친구 없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기자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뒤돌아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났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