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무심코 응한 길거리 인터뷰 하나가 그녀의 눈에 띄는 외모와 담담한 분위기 덕분에 편집본에 실려 프로그램 본편에 등장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짧은 인터뷰 영상은 현지 소셜 플랫폼에서 소소한 화제를 모았다.
[언니, 너무 예뻐요! 연락처 알려주세요!]
[저요! 저 언니랑 사귈래요!]
영상 댓글에는 비슷한 반응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소은은 우연히 그 영상을 보게 되었을 때도 그저 헛웃음이 나왔을 뿐이었다. 특별한 감정은 들지 않았고 그녀는 무심하게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겨버렸다.
그러나 그날 밤, 집에 막 돌아와 현관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현관문이 벌컥 거칠게 열리며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렸고 싸늘한 얼굴의 나도윤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섰다.
눈빛은 먹구름처럼 짙었고 그 안엔 위험한 기운이 어른거렸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이소은 앞의 거실 탁자 위로 내던졌다.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인터뷰 영상 속 이소은의 모습에서 멈춰 있었다.
“이소은, 이게 대체 뭐야?”
분노로 눌러 담긴 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공간을 가르며 손가락이 화면을 가리켰다.
“‘남자친구 없어요’는 또 무슨 말이야? 너 지금... 이게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 봐!”
이소은은 화면 속 미소를 머금은 채 카메라를 바라보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앞의 나도윤을 천천히 돌아봤다.
화가 잔뜩 어린 얼굴과 헝클어진 숨결,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감정까지 그 모든 것이 어딘가 지나치게 우스워 보였다. 그러자 지쳐버린 듯한 피로감이 천천히 가슴속을 잠식해 왔고 이소은은 말없이 휴대폰을 들어 그에게 건네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나 아니야. 그냥 닮은 사람이겠지.”
“너 지금 나를 바보로 알아?”
나도윤은 그녀의 손을 세게 쳐냈고 휴대폰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화면 위로 금이 가며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너는 믿는 거냐고? 이소은, 너 지금 뭘 하자는 거야? 한 달 내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다 비꼬듯 하더니 이젠 대놓고 밖에서 ‘나 솔로예요’ 하고 다니냐?”
이소은은 산산조각 난 화면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문득 5년 전의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그땐 그녀와 나도윤이 사귄 지 2년쯤 되었을 때였다.
그날, 나도윤의 회사에서 크리스마스 연말 파티가 열렸고 이소은은 그의 공식 파트너 자격으로 참석했다.
행사 중간, 그녀는 화장실에 다녀오던 길에 복도 한쪽 모퉁이에서 나도윤이 한 경제 매체의 짧은 인터뷰를 받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기자가 물었다.
“나 대표님, 젊고 유능하신데요. 오늘이 크리스마스잖아요? 혹시 여자친구분과 어떤 특별한 계획 있으신가요?”
나도윤은 술을 좀 마셨는지 말투에 약간의 가벼움과 조롱이 섞여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입꼬리를 비틀듯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친구? 해외 나가 있어요. 난 지금 여자친구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죠.”
그 말은 마치, 차가운 얼음물 한 양동이를 머리 위에서부터 들이부은 듯한 충격이었다.
이소은은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고 그의 말 한마디는 피할 새도 없이 귀에 또렷하게 박혀 들어왔다. 심장은 무자비하게 쑤셔 왔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 만큼 고통이 밀려왔다.
눈가가 붉게 젖어든 채, 그녀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몰래 녹화해 두었던 영상을 그대로 들이밀며 나도윤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는 그저 짧은 한숨만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잘못 들은 거야. 기자가 전 여자친구에 대해 물어봤어. 나는 전 여자친구가 외국에 있다’고 한 거고.”
“하지만 도윤 씨는 분명히 여자친구라고 했어.”
이소은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핸드폰을 내밀며 영상 속 그 말을 다시 확인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휴대폰을 확 낚아채더니 귀찮다는 듯 말했다.
“이소은, 제발 좀 감정적으로 굴지 마. 영상도 흐릿하고 소리도 잘 안 들리잖아. 그걸로 뭘 증명하겠다는 건데? 내가 전 여자친구라고 했다면 그게 맞는 거야. 믿지 못하겠으면 어쩔 수 없지.”
그러고는 그녀를 남겨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날 밤, 이소은은 혼자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의 그녀는 정말로 그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래서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결국 그의 엉성한 변명을 믿어 주기로 했다. 스스로 감정을 눌러 삼키며 모든 상처를 혼자 끌어안은 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넘겨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이번에는 나도윤이 그녀를 향해 따지고 있었고 이소은은 가만히 그의 눈을 바라봤다. 잠시 후, 그녀는 예전에 그가 자신에게 했던 바로 그 말투를 그대로 떠올리듯 하나하나 또박또박 따라 하며 입을 열었다.
“그거 진짜 나 아니야. 그냥 좀 닮은 사람일 뿐이야. 믿지 못하겠으면... 나도 어쩔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