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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나도윤은 한유라에게 주이현과의 연락을 완전히 끊으라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녀가 직접 모든 연락처를 차단하고 삭제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확인한 뒤에야 그는 냉정한 얼굴로 한 차례 더 경고를 덧붙였다. 모든 일을 처리하고 나서야 그는 문득 이소은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연락하신 전화는 현재 통화 중입니다. 삐 소리 후 음성 사서함으로...” 낯선 기계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이소은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화면 위에 빨간 느낌표 하나만 보였다. 그는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뭐야... 삐쳤다고 이젠 차단까지 해?” 손끝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잠시 가라앉았던 짜증 섞인 숨이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 “하, 여자란 참...” 그는 더는 직접 연락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붉은 장미 준비해. 아파트로 보낼 거야. 카드 문구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이소은이 예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아주 사소한 낭만이었다. “‘그만 화 풀어. 저녁은 집에서 먹자. 오늘은 내가 요리할게.’ 그렇게 써.” 그의 말투는 늘 그렇듯 익숙했다. 배려처럼 들리지만 어디까지나 시혜적인 ‘양보’에 불과했다. 자신이 이 정도까지 해줬으니 이제 그녀가 알아서 기분을 풀어야 한다는 뉘앙스였다. 그날 저녁, 그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직접 마트에 들렀다. 냉장 코너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이소은이 좋아하던 음식을 떠올리며 몇 가지 재료를 골랐다. 그가 장바구니에 담은 것은 죄다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것들이었다. 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은 정적뿐이었다. 그는 현관 스위치를 켰다. LED 전등에서 쏟아진 흰빛이 거실을 가득 채웠지만 그 밝음은 이상하리만큼 더없이 외롭게 느껴졌다. 집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고 지나치게 깨끗했다. 그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며 설명하기 어려운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분명 무언가가 이미 ‘사라진’ 듯한 공허함이 공간 곳곳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거실 한가운데에서 유난히 붉게 피어난 장미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치게 화려해서인지 오히려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 옆 작은 테이블 위에는 노란 포스트잇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는 천천히 다가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잔잔한 글씨체, 너무도 익숙한 필체였다. [우리 그만 헤어져. 도윤 씨, 이제 원하던 대로 한유라랑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 이소은] 그 글자들이 그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헤어지자고?” 그는 얼어붙은 사람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이소은이? 아무리 상처를 줘도, 늘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그 여자가?” 한때 술에 취해 엉뚱한 이름을 불렀을 때도, 그녀의 마음을 처참하게 짓밟았던 순간들조차 이소은은 늘 ‘이해한다’는 말 한마디로 넘겨왔다. 조용히 모든 걸 참아내며 엉성한 변명 하나에도 쉽게 마음을 무너뜨리던 사람이었다. “정말... 떠났다고? 아니, 말도 안 돼.” 이건 분명 자신을 시험하고 감정을 확인받기 위한 유치한 수단일 거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예전처럼 조금만 있으면 돌아올 거야.”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심장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오래도록 애써 눌러 두었던 균열이 소리 없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가슴 깊은 곳이 묵직하게 아파왔다. 피부 깊숙이 남아 있는 화상보다도 단 한 장의 메모가 훨씬 더 깊고 쓰라리게 파고들었다. 그는 손에 쥔 포스트잇을 무의식중에 꽉 움켜쥐자 얇은 종이의 가장자리는 그의 힘을 견디지 못한 채 구겨지며 일그러졌다. 그때였다. 정적을 찢는 듯한 벨 소리와 날카로운 진동음이 방 안을 울렸고 놀란 탓에 그의 손이 떨리며 포스트잇은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는 그것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반사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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