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화

이건 그녀의 미래를 위한 계획이었다. 이곳을 영원히 떠나는 것. 안유정이 물었다. “실례지만 지금 바로 여권 재발급 신청해도 될까요?” “가능합니다. 여기 개명 신청서 들고 아래층 창구로 가셔서 여권 재발급 신청하면 됩니다.” 안유정은 최대한 빨리 여권 재발급 신청을 마쳤지만 학교 졸업장이나 주민등록부 등 다른 건 바꾸지 않았다. 어차피 일주일 뒤면 새 여권을 가지고 출국할 텐데 필요 없는 예전 신분 따위 남겨두고 가면 그만이다. 새 여권을 들고 건물을 나서자 길 건너편에 있는 한성의 랜드마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는 세승 그룹 대표 백승우의 인터뷰가 상영되고 있었다. 진행자가 예리하게 그의 작은 행동을 알아차리고 웃으며 물었다. “백 대표님, 줄곧 반지를 쓰다듬고 계시더라고요.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은반지인 것 같은데 특별한 의미라도 있나요?” 백승우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보여주었다. “이건 제 결혼반지입니다.” “엇, 죄송해요. 지금 대표님 신분이면 결혼반지는 당연히 제법 큰 다이아몬드일 줄 알았어요.” “결혼반지는 제가 직접 조금씩 다듬으면서 만든 거예요. 안쪽에 저랑 제 아내 이름도 새겼죠.” “우와, 정말 알파벳이 있네요. BSW 그리고...” “AN, 안이요. 제 아내 이름이 안유정이에요.” “와, 사모님 정말 부럽네요. 백 대표님과 결혼하다니, 전생에 우주를 구했나 봐요.” “제가 전생에 우주를 구해서 그 사람과 결혼한 거죠.” 주변 행인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정작 당사자인 안유정만 비꼬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와 백승우는 한때 정말 사랑했던 사이였고 교복부터 웨딩드레스까지 총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동고동락하며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눈에 가장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두 달 전 낯선 여성으로부터 한 장의 사진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여자는 매혹적인 스타킹과 파자마를 입은 채 목부터 가슴까지 불긋한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조금 전 격정적인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내미는 여자의 검지에는 은색 반지가 있었는데 헐렁한 걸 봐서 남자 반지 같았다. 반지 위에는 ‘BSW&AN’이라는 영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중에 백승우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녀의 이름은 임진희,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네살로 백승우가 새로 고용한 생활 비서였다. 그 순간 안유정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며 당장 백승우의 사무실로 달려가 물어보고 싶었다. 생활 비서가 성생활도 책임지는지. 하지만 결국 그녀는 포기했다. 사진 속 흔적이 가득한 임진희의 몸이 이미 답을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안유정은 주변의 감탄과 부러움 속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보석 세공소로 향했다. 왼쪽 약지에서 반지를 빼는 순간 저릿한 고통이 그녀의 마음을 관통했다. “손님, 어떤 걸 가공하려고요?” “이 반지 녹여주세요.” “반지에 각인까지 새긴 걸 보니 특별한 의미가 있을 텐데 정말 녹일까요?” “네, 최대한 빨리해 주세요.” 30분 후, 안유정은 예쁘게 포장된 보석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백승우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그는 꽃다발을 손에 들고 있었다. “미안해, 유정아. 요즘 일 때문에 바빠서 너랑 같이 있을 시간이 없었어. 네가 좋아하는 프리지아 사 왔는데 마음에 들어?”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안유정은 그에게서 여자 향수 냄새를 맡았다. 고개를 기울이자 마침 목울대에 작게 남은 이빨 자국 하나가 보였다. 셔츠 깃에는 여자의 립스틱 자국도 있었다. 빨갛고 선명했다. 안유정은 코웃음이 났다. 일하느라 바쁜 걸까, 임진희랑 뒹구느라 바빴던 걸까. “왜 말이 없어?” 안유정은 그를 밀어냈다.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럼 내가 방까지 안아서 데려다줄까?” 그렇게 말하며 그가 몸을 숙이고 안을 준비를 하자 안유정은 다시 그를 밀어냈다. “피곤할 텐데 씻고 일찍 자.” 백승우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유정아, 결혼반지 어딨어?”
Previous Chapter
1/21Next Chapter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