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나 사표 냈는데.”
내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난 결제한 적 없는데.”
박윤성이 힘을 쓰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몸을 돌리는 순간 손에 든 서류를 뒤에 있는 서랍에 넣고 닫아버렸다. 워낙 동작이 은밀하기도 했고 박윤성의 시선을 피해서 한 거라 그는 발견하지 못했다.
“나 며칠 뒤 출장 가.”
박윤성이 고개를 숙이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박윤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같이 가야지.”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출장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따라가.”
한가한 것도 아니고 따라갈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계속 따라다니게 될 거야.”
박윤성이 말했다.
“하루일지라도 말이야.”
박윤성이라면 정신을 못 차렸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나는 이제 놀랍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일하러 가는데 내가 뭐 하러 따라가? 예전에는 조민서 씨 잘 데리고 다녔잖아. 이번에도 데리고 가서 잘 좀 가르쳐.”
박윤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또 비아냥대는데?”
나는 그 말이 참으로 뜬금없었다.
“그냥 그러는 게 좋겠다는 거지. 조씨 가문을 다시 일궈 세우고 싶다잖아. 네 옆에 있으면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 아니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윤성이 나를 차갑게 쏘아보더니 방에서 나갔다. 나는 그런 박윤성을 보며 어이없어 할 말을 잃었다.
그날 밤 박윤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다리를 쭉 뻗고 꿀잠을 이뤘고 저녁 식사도 부르지 않고 방 앞까지 가져다줘 나는 받아서 먹기만 하면 됐다.
박윤성만 내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이렇게 사는 것도 꿀일 것 같았다.
‘근데 도대체 왜 나를 여기 가둬두려는 거지? 할아버지가 죽는다 한들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어차피 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데 보면 화만 날 거 아니야.’
전에는 머리만 대면 잤는데 자살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요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한밤중이 되어 추워진 나는 이불을 끌어다 덮기도 전에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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