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마침 사진을 다 정리했는데 방문이 열렸다.
앞에 선 이준서는 안으로 들어올 생각도 하지 않고 진이서를 내려다보며 반박할 여지 없이 덤덤하게 명령했다.
“성동구에서 파는 단팥죽 먹고 싶어. 가서 사와.”
성동구까지 가려면 도시를 가로질러야 했고 적어도 3, 4시간이 걸렸지만 이준서는 종래로 신경 써본 적이 없었다. 이준서가 원하면 진이서는 그게 뭐든 다 들어줘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갔겠지만 밤새 무릎을 꿇고 비를 맞는 바람에 열이 펄펄 끓어 머리가 너무 무거웠다.
이준서는 진이서가 망설이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진이서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갑과 차키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네 시간을 꼬박 달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단팥죽을 이준서 앞에 대령하는데 이준서는 그런 진이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소파에 앉은 강예슬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숟가락으로 단팥죽을 떠서 호 불고는 강예슬의 입가로 가져갔다.
“예슬아. 전에 아파서 입맛이 없다고 달콤하고 따끈한 거 먹고 싶다 그러지 않았어? 이거 한번 먹어봐.”
강예슬의 창백한 얼굴에 홍조가 올라오는가 싶더니 얌전하게 입을 벌렸다.
‘아... 강예슬 먹이려고 그런 거였네.’
옆에서 지켜보는 진이서는 가슴이 답답해 숨 쉬는 것조차 너무 아팠다.
지금까지 이준서는 세상과 담을 쌓고 소통하기를 꺼렸다. 밥을 먹는 것조차도 진이서가 한참 달래야 할 정도였다. 진이서는 이준서의 모든 성질과 냉대를 감내하며 생활뿐만 아니라 이준서와 관련한 모든 걸 알뜰살뜰 챙겼다. 그러는 동안 진이서는 이준서의 냉대와 무시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강예슬을 살뜰히 보살피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준서는 사람을 챙길 줄 모르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사람을 관심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말이다.
진이서는 칼로 가슴을 후벼파는 것처럼 너무 아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임시로 옮긴 게스트룸으로 들어가는데 뼈가 시릴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다.
‘열나나 보네.’
진이서는 그대로 이불을 덮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진이서는 잠에서 깼다. 어렴풋이 강예슬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와 이준서가 그런 강예슬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데 문을 열자마자 싸늘한 표정의 이준서가 보였다. 이준서는 다짜고짜 진이서의 손목을 으스러지게 잡더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이서. 감히 단팥죽에 약을 타? 빗속에서 무릎 꿇은 걸로는 부족한가 보지?”
약을 탔다는 말에 진이서는 넋을 잃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 아니야. 사 오자마자 바로 넘겼는데 내가 무슨 수로 약을 탄다고 그래.”
“너 말고 누가 있어? 네가 아니면 왜 단팥죽을 먹자마자 배가 아파?”
이준서는 그 말을 믿지 않고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진이서를 바라봤다.
“반성이 뭔지 모르니 예슬이 느꼈던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는 수밖에.”
이준서가 보디가드에게 명령했다.
“망고 가져와서 먹여.”
이 말에 진이서는 눈빛이 요동쳤다. 진이서는 망고 알레르기가 있었다.
“이준서. 이러면 안 되지. 나는 그런 적 없다고.”
당황한 진이서가 뒷걸음질 쳤지만 보디가드는 그런 진이서를 제압해 망고를 거칠게 입에 밀어 넣었다.
달짝지근한 망고가 입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이서는 몸에 두드러기가 돋더니 목구멍이 부어오르며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
이준서는 차가운 눈빛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진이서를 내려다보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려 침대에서 온갖 가냘픈 척은 다 하며 신음하는 강예슬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