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되던 해 진이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이준서와 결혼했다.
결혼한 5년 동안 이준서는 차가운 조각상처럼 도무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어기면 안 되는 규칙까지 3개 만들었다.
말하지 말 것, 건드리지 말 것, 그리고 잠자리를 바라지 말 것.
그러다 어느 날 지진이 닥쳤고 진이서는 본능적으로 이준서를 챙기려고 달려갔다. 다만 이준서는 조심스럽게 다른 여자를 품에 안은 채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폐허를 빠져나갔다.
만신창이가 되어 병원에서 깨어난 진이서는 바로 비틀거리며 이준서를 찾아갔다가 그 여자가 부드럽게 타이르는 걸 들었다.
“준서야. 나는 찰과상이라 괜찮아. 와이프 많이 다친 것 같은데... 정말 안 가봐도 돼?”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이준서가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문을 뚫고 나왔다.
“나는 진이서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까 죽든 말든 상관없어.”
순간 진이서는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 걸 느꼈다. 하여 이준서의 할아버지 이성범이 병원으로 달려왔을 때 진이서는 그저 이렇게 요구했다.
“할아버지. 저 준서와 이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