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진이서는 그런 자신을 조롱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도 이런 망상을 하는 게 너무 웃겼기 때문이다.
강예슬은 옆에 선 진이서를 보고 눈알을 굴리더니 웃으며 초대했다.
“이서 씨. 오늘 준서와 새로 선 테마파크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요?”
이준서가 반대했다.
“뭐 하러. 난 싫어.”
강예슬이 팔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나가 노는 건데 사람이 많아야 재밌지. 저번 일은 나도 이서 씨 용서하기로 했어. 너도 다른 사람 많이 만나봐야지.”
놀랍게도 이준서는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진이서는 그런 이준서를 보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강예슬이 입만 열면 무조건 들어줄 정도로 조련이 된 건가 싶기도 했다.
진이서는 원래 가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했다가 다른 사단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용히 따라나섰다.
테마파크에 도착한 강예슬은 이상하리만치 흥분하며 이준서를 데리고 놀이기구를 깨기 시작했다. 정신이 온통 강예슬에게 팔린 이준서는 함께 회전목마, 롤러코스터 등 전에는 시끄럽다고 눈길조차 주지 않던 놀이기구에 도전했다.
귀신의 집을 지나치는데 강예슬이 흥미를 보이자 진이서가 말렸다.
“준서야. 너는 너무 자극적인 건 피해야 하는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증상 중 하나가 큰 자극과 스트레스에 놓이면 정서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준서는 강예슬이 실망한 표정을 짓자 얼굴을 굳히며 진이서를 차갑게 쏘아봤다.
“언제부터 네가 나를 대신해서 결정했지?”
그러더니 강예슬과 함께 티켓을 구매해 안으로 들어갔다. 진이서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어쩔 수 없이 뒤따라갔다.
안은 어두컴컴했고 무서운 음악이 흘러나올뿐더러 때때로 귀신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강예슬은 소리를 지르며 이준서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이준서도 놀라서 몸이 살짝 굳었지만 변함없이 강예슬의 곁을 지켰다.
혼자 뒤따라가는 진이서는 서로를 꼭 끌어안은 두 사람과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코너를 도는데 좀비로 변장한 스태프가 갑자기 뒤에서 강예슬을 덮쳤다.
“아악.”
강예슬이 비명을 지르며 잽싸게 뒤로 피하다가 팔꿈치로 진이서의 눈을 명중했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진이서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모서리가 뾰족한 장식용 산에 허리를 찍고 말았다.
극심한 고통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허리를 숙이는데 뜨거운 액체가 치마를 적시는 게 느껴졌다. 강예슬은 그제야 반응하고 울먹이며 물었다.
“이서 씨. 괜찮아요? 많이 다친 거 아니죠?”
진이서는 아파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강예슬은 진이서가 가만히 있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아까는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준서야... 나 정말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이준서가 그런 강예슬을 꼭 끌어안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알아. 다 알지.”
그러더니 허리를 숙여 얼굴이 하얗게 질린 진이서에게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
“사과했잖아. 뭘 더 바라?”
진이서는 막무가내로 나오는 이준서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는 가슴이 더 아팠다. 겨우 참고 자리에서 일어난 진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란 적 없어. 난 괜찮아.”
귀신의 집에서 나온 이준서와 강예슬은 함께 온 걸 진이서를 잊었는지 바로 다음 놀이기구로 향했다.
허리를 다친 진이서는 걸음이 느려져 두 사람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불타듯 빨간 석양 아래 이준서가 때때로 고개를 숙여 강예슬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게 보였다. 진이서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부드럽고 진지한 눈빛이었다.
순간 피곤이 몰려온 진이서는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이준서에게 문자를 보냈다.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갈게.]
그러더니 몸을 돌려 고통을 참으며 출구로 향했다. 겨우 약국까지 걸어간 진이서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든 상처를 간단하게 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