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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말다툼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소파에서 이야기하던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구재이는 비웃듯 짧게 웃고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신혼집의 모든 인테리어와 장식은 그녀가 직접 손수 준비하며 정성을 들였던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마지막 애착마저 짓밟고 있었다. “그래도 집에 들어올 낯짝은 있나 봐?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왔어? 아침에 전화했더니 감히 널 협박했지? 이혼했다고 해서 네가 더 나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너처럼 허영심만 가득한 여자는 어디를 가도 천대받을 거야. 지금 당장 부엌으로 가서 밥이나 해! 손님들 초대했으니까 또 내 체면 구기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민지환은 맨손으로 지금의 자리를 일궈냈다. 그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만큼 계산이 빠르고 속물적인 여인이었다. 늘 아들의 결혼이 사업에 도움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평범한 집안 출신인 구재이를 끝내 깔봤다. 물론 ‘평민 출신’이라는 말은 구재이가 세상에 일부러 내세운 가짜 신분이었다. 구재이는 부엌 쪽을 힐끔 봤다. 식자재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손님이 올지 짐작이 갔다. 그동안 시어머니는 구재이를 곱게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매번 열 명이 넘는 손님을 불러놓고 일부러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날만큼은 집에 도우미 한 명도 두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구재이 혼자였다. 누구든 그녀에게 명령할 수 있었고 그녀는 반박할 수도 없었다. 반박이라도 하면 시어머니는 곧바로 ‘이 결혼을 더는 지킬 마음이 없구나’라며 몰아붙였다. 그날도 구재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세희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할 요리가 이렇게 많으면 재이 씨가 힘들어할 거예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이따 친구분들 오시고 제가 손 놓고 있는 게 보이면 민망하잖아요.” 그러나 말이 끝나자마자 시어머니는 재빨리 이세희의 팔을 잡아 다시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구재이를 향했다. 눈빛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가득했다. “너랑 저 애가 어떻게 같아? 쟤는 타고난 천민이라 이런 일이나 해야 해. 넌 다르지, 글로벌한 대스타잖아. 어떻게 같은 취급을 하겠니? 넌 여기 앉아서 대접이나 받으면 돼.” “그래도 좀 미안해요. 손님으로 와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무슨 손님이야? 곧 너랑 우리 지환이가 결혼할 텐데, 그때는 저 여자가 손님이지.아니, 손님도 아냐. 그냥 남일 뿐이지.” 구재이는 자리에 서서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이세희는 단 한마디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자신을 ‘두둔’하는 말만 골라 했다. 하지만 그 ‘두둔’이란 게 얼마나 비웃음 같던지... 그녀의 그런 말들이 오히려 시어머니를 더 대담하게 만들었다. 둘 사이의 공기가 점점 더 화기애애해질수록 구재이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이제 다 하셨어요?” 시어머니가 입을 떼려는 순간 구재이는 곧바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구재이를 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 하는 거야, 버릇없게! 지금 우리 얘기 중인 거 안 보여? 어서 부엌 가서 밥이나 해!” “저, 이미 그 사람하고 이혼했어요. 이제 누가 밥을 해야 할지는 알아서 하시죠. 저분을 그렇게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 하셨잖아요? 그럼 이제 저분이 해드리면 되겠네요.” 구재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 이세희를 바라봤다. 그 순간, 잠시나마 기뻐하는 기색이 스치는 듯한 이세희의 눈빛을 구재이는 놓치지 않았다. 구재이는 그들의 연기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침실에는 그녀 것이라곤 많지 않았다. 옷들도 가져갈 생각이 없었고 남은 서류들만 챙겨서 떠나려 했다. 문 앞까지 갔을 때 시어머니가 길을 막으며 말했다. “그래, 정말 더는 못 살겠다는 거지? 이혼 서류도 이미 떼왔는데 아직 할 말 남았어?” 구재이는 그녀를 밀쳐 내버리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오려다 민지환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방금 서명하고 이혼을 마친 참이었다. 그때 민지환은 이세희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어머니가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고 해서 신혼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구재이가 당연히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그들이 마주치면 혹시라도 이세희가 곤란한 상황과 맞닥뜨릴까 서둘러 돌아온 것이었다. 그의 얼굴은 잔뜩 어두웠다. 구재이를 옆으로 밀치자마자 이세희 앞으로 달려가 그녀를 긴장한 표정으로 훑어보았다. “괜찮아요?” 잠깐 밀린 충격으로 구재이의 등이 캐비닛 모서리에 부딪혔다. 등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것보다 가벼운 관심 섞인 민지환의 한마디가 더 분하고 밉게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세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민지환은 돌아서서 구재이를 악착같이 노려보았다. 마치 구재이가 큰 죄를 지은 사람인 양 말이다. 구재이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눈은 혹시 장식용인가? 아무 데서나 사람 쏘아보려고? 이세희 씨가 멀쩡히 당신 앞에 서 있는데 그게 안 보여? 입 달렸으면 말 좀 제대로 해. 말 못 하면 차라리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하고.” “억지 부리지 마. 인터넷에 난리 난 일들, 다 당신이 한 짓 아니야?” 민지환은 휴대폰을 열어 한 기사 화면을 구재이에게 내밀었다. 돌아오는 길에 본 기사였다. 구재이는 그의 화면 속 사진과 설명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낯익은 이미지와 문구들이었다. 비록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 기사를 보자 쾌재를 부를 만큼 속이 통쾌했다. 특히 이세희의 불쾌한 표정을 보며 말이다. “설마 이게 거짓말이라는 거야? 야광 대본 덕분에 세희 씨가 톱스타가 된 거잖아. 이 기사에 틀린 말 하나라도 있어?” 구재이는 이세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기에 하나라도 거짓이 있으면 내가 나가서 차에 치여 죽을게. 하나도 틀린 게 없으면 당신이 나가서 차에 치여 죽어.” 이세희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민지환을 바라봤고 민지환은 그녀의 어깨를 다정히 쓰다듬으며 두둔하려는 태도로 앞에 섰다. “죽고 싶으면 혼자 가서 죽어. 억울한 사람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이 일, 당신이 한 거지? 그렇게까지 못마땅했어? 이혼한 마당에 이렇게까지 해야 했냐고.” 민지환의 말은 구재이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구재이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스스로 어리석은 자와는 싸우지 말라고 다짐했다. “솔직히 말해 당신 목 위에 있는 머리는 그냥 키 커 보이게 하려고 달려 있는 것 같아.”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구재이도 지난 3년이 그랬다. 이제 그 바통은 민지환에게 넘어갔고 당분간 그는 눈이 멀고 마음도 닫힌 상태로 지낼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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