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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당신의 행복을 빌지 않아

이런 말은 지난 3년 동안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매번 구재이는 자신이 잘못했구나 생각하곤 했다. 사랑했기에, 구재이는 자신의 태도를 최대한 낮췄고 그의 가족들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며 돌봤다.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비천하다는 사실조차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과거에 했던 어리석은 일들도 반드시 결말을 맺어야 했다. “그래요,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저 어머님 아들과 이혼하기로 결정했어요.” 이 말을 하고 구재이는 상대편의 반응이 어떨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짐을 챙기고 서류를 들고 집을 나서기 직전, 구재이는 민지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두 시간 안에 오라고 말이다. 만약 안 오면 그동안 자신이 모아온 모든 것들, 즉 이세희가 불륜녀라는 증거들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이세희는 사람들로부터 매도당하는 신세가 될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민지환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극도로 불쾌해 보였다. 구재이에게 이렇게 위협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위협의 대상이 구재이라는 점이 그를 더 당황하게 만들었다. 구재이의 표정은 침착했다. 민지환의 안색이 얼마나 불쾌한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과거에 구재이는 민지환이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위로하러 다가가고 어떻게든 그를 기쁘게 하려고 애썼다. “서류들 다 챙겨왔어?” “꼭 이렇게 억지를 부려야겠어? 결혼할 때 내가 말했잖아. 당신 신분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고.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건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때 무슨 수를 쓰든 나랑 결혼하겠다고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못 참겠다는 거야?” 민지환은 비꼬듯 구재이를 쳐다봤다. 구재이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깊은 통증을 느꼈다. 결혼 당시에는 숨겨진 사정들이 있었고 그녀는 그동안 몇 번이고 해명을 해왔다. 하지만 민지환은 결코 구재이의 말을 듣지 않았고 자신이 조사해낸 이른바 ‘진실’만을 믿어왔다. 구재이는 더 이상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말이 많네.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오늘 이 목적이 달성되지 않으면 그 사람한테 망신을 줄 거라고. 이건 농담이 아니야.” 구재이의 단호한 태도를 보며 민지환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저 말을 믿다니... 내 머리가 이상해졌나? 저 사람이 무슨 위협 거리를 갖고 있기나 하겠어?’ “당신이 안 믿을 줄 알았어. 그래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지.” 구재이는 가방에서 한 뭉치 사진을 꺼내 민지환에게 건넸다. 무슨 이유인지 그 사진 뭉치를 본 순간 민지환의 심장은 갑자기 뛰기 시작했고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럼에도 그는 손을 내밀어 사진을 받았다.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자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사진들은 매우 교묘한 각도에서 찍혀 있었고 매 장마다 이세희의 얼굴이 분명히 보였으며 둘의 각도는 몹시 은밀해 보였다. 이 사진들이 밖으로 나가면 분명 이세희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었다. “이런 사진은 더 많아. 이 정도의 카드면 충분히 이혼할 수 있겠지?” 구재이는 담담히 민지환을 바라봤다. 민지환은 손에 사진을 움켜쥐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 사진들 어디서 난 거야? 이렇게 수작을 잘 부리는 사람인 줄 몰랐네. 당신 위치를 지키려고 별짓을 다 해서 세희 씨를 깎아내리다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래서 구재이는 전혀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단 한 번의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조용히 돌아서서 민원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민지환은 그녀의 입에서 진실을 듣지 못한 게 화가 나 곧바로 뒤따라 들어왔다. “어서 사인해. 사인만 하면 이 증거 전부 줄게.” 이제 구재이는 단 하나의 바람도 없었다. 민지환과 완전히 끝내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가 이세희와 어떤 관계를 이어가든 이제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민지환은 결코 믿지 않을 것이었다. 이 사진들이 사실은 이세희가 직접 보낸 것이라는 걸. 매번 사진을 보낼 때마다 이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더욱 믿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말보다 더 잔인했다. 그 사진 한 장 한 장이 구재이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그녀는 알았다. 그저 거기, 스포트라이트 아래 서 있기만 해도 민지환은 주저 없이 그녀에게로 향할 거라는 걸.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의 시선은 언제나 한 사람만을 향했다. 그리고 구재이는 언제나 버려지고, 무시당하는 쪽이었다. 결국 민지환도 이 상황에 몰려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이혼 후 구재이는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그러나 그는 두 번 다시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세상에 기회란 단 한 번뿐이다.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서류가 완전히 처리되고 구재이는 마침내 마음속의 마지막 돌덩이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맑고 환한 미소였다. “난 당신의 행복을 빌지 않아. 그저 당신이 평생, 원하는 건 단 한 번도 얻지 못하길 바랄 뿐이야.” 이 얼마나 독한 말인가. 민지환은 이를 악물었다. ‘대체 얼마나 증오해야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한때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가 이제는 이렇게 냉혹한 말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는 구재이를 너무 얕봤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떠난 뒤에야 민지환은 이혼 합의서를 들여다봤다. 그 속에는 ‘구재이는 일체의 재산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었다. 한 푼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에 그는 비웃었다. ‘허영심 많은 여자가 재산 하나 안 챙기고 나가다니, 참 웃기는군.’ 하지만 만약 민지환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구재이가 알았다면 오히려 더 비웃었을 것이다. 3년 동안 민지환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생활비라며 넣어주는 카드조차 그녀는 거의 쓰지 않았다. 혹여 썼다 해도 곧바로 그만큼을 다시 채워 넣었다. 집 안의 옷과 장식품을 제외하면, 이 결혼 생활은 구재이에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녀가 민지환과 결혼했던 이유는 재산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구재이는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이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바로 시어머니와 이세희였다. “아침에 전화하니까 우리 아들이랑 이혼한다더라니까 글쎄? 허영심에 눈이 멀어서 우리 집 재산만 노리던 여자가 설마 진짜 이혼하겠어?” “그때는 다 오해했던 거야. 아쉽게도 인연이 안 닿았지. 하지만 조금만 더 버텼다면 네가 내 며느리가 됐을 텐데... 구재이 같은 여자가 감히 끼어들 틈이 없었을 거야.” “아이, 그런 말씀 마세요. 재이 씨가 지환 씨랑 더 잘 어울려요. 결혼한 지도 꽤 됐고 금슬도 좋아 보이잖아요.” 이세희의 말이 끝나자 구재이는 본능적으로 속이 뒤집혔다. ‘금실이 좋다고? 앞이 보이기나 하는 걸까? 아니면 저런 말을 할 수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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