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그녀에게 준 선물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구재이의 마음은 복잡했다.
한때는 평생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때 집을 떠날 때의 자신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생각하니, 지금은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현관 앞에 서자 망설여졌다. 들어가야 할지 그대로 돌아서야 할지 도무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그녀를 꽤 세게 앞으로 밀었다.
“뭐 하는 거야? 왜 아직도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어? 우리가 널 기다린 지 벌써 3년이야! 3년을 기다렸다고! 아저씨가 너한테 부담 주기 싫어 안 나서신 거지, 나 같았으면 진작에 끌고 왔어!”
그녀를 밀어 넣은 사람은 다름 아닌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 주리아였다.
주리아를 보자마자 구재이는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걸 함께 나눈 사이였다. 서로의 비밀, 고민, 첫사랑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구재이가 민지환을 좋아하게 된 일도 제일 먼저 안 사람이 주리아였다.
그때 주리아는 완강히 반대했다. 그 사랑은 절대 안 된다며 단호했다.
하지만 구재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 사람과 꼭 결혼하겠다고 하며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다. 그 일로 주리아는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그 일이 집안에 알려지자 구재이는 크게 화를 냈다.
주리아가 가족에게 그 일을 알린 걸 배신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리아가 선을 넘었다고 여겼고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완전히 등을 돌렸다.
그렇게 3년 동안,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서로의 연락처는 여전히 휴대폰에 남아 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다시 마주한 순간, 구재이의 눈가가 붉어졌다.
‘3년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족을 보고 또 이렇게 친구까지 만날 줄이야...’
주리아의 눈시울도 젖었다. 그녀는 구재이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서 가자. 아저씨랑 네 오빠가 계속 널 기다리고 계셔.”
구재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리아의 손을 잡고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섰다.
3년 만에 다시 들어온 집은 여전히 익숙한 향을 품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는 오빠 구정한과 아버지 구성훈이 앉아 있었다.
그들을 본 순간, 구재이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구성훈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그 순간, 구재이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녀는 그대로 아버지 품으로 달려가 꽉 끌어안았다.
어릴 적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강인하고 든든한 존재였다.
그 그늘 아래서 구재이는 마음껏 버릇없이 굴 수 있었고 모든 걸 감싸주는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3년 만에 다시 마주한 아버지는 눈에 띄게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미간의 주름, 피로가 배인 눈빛...
모두 다 자신의 탓 같았다.
‘그때 내가 그토록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사랑 따위에 모든 걸 걸지 않았다면 가족과 이렇게 오랜 세월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
구정한도 일어나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버지와 동생이 재회하는 순간을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그 곁을 지켰다.
“아빠...”
몇 년 만에 다시 부르는 그 한마디에 구성훈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는 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단 하나뿐인 딸이었다.
감정이 조금 가라앉자 구재이는 쑥스러운 듯 오빠 앞으로 걸어갔다.
“오빠... 그때는 미안했어. 너무 철이 없었던 거야. 나 이제... 돌아왔어.”
원래라면 구정한이 여전히 화가 나 있을 줄 알았다.
그녀가 민지환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구정한은 단호히 말했다.
“그 남자랑 결혼할 거면 다시는 이 집에 발 들일 생각 마.”
그런데 3년 뒤, 먼저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라’고 한 사람이 바로 그 오빠였다.
그들은 온 가족이 구재이를 무척 아꼈다. 그래서 구재이가 민지환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당연히 반대했다. 어떻게 자기 딸, 자기 여동생이 시집가서 억울함을 감내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다행히 세월이 흘러 마침내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돌아왔으니 됐어. 우린 내내 네가 돌아오길 기다렸어.”
가족은 곧 항구다. 바깥에서 무엇을 겪고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가장 넓은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준다.
그동안 구재이는 미안한 마음에 집에 갈 엄두도 못 냈고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잘못 생각했는지 깨달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구재이의 전화 한 통만을 기다리며 데리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재이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절대 떠나지 않을게.”
“그럼 됐어. 너 돌아오는 거 둘째랑 셋째한테도 이미 전해 놨어. 둘 다 요즘 바빠서 아직 답을 못했지만 소식 들으면 분명 기뻐서 달려올 거야. 다만 둘째는 좀 화를 낼지 모르니까 그때는 네가 잘 달래줘.”
집을 떠나기 전부터 구재이는 가족과 크게 틀어졌고 특히 둘째 오빠와는 심하게 다퉜다. 둘째와 한바탕 소리를 높인 뒤, 구재이는 집을 나왔다. 곧 둘째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유 없이 긴장이 올라왔다. 만나면 또 화를 낼까 걱정되면서도 정작 자신의 용서가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두려웠다.
구정한은 그런 동생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어릴 적처럼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 널 제일 아끼는 사람이 바로 그 녀석이야. 무슨 말을 해도 결국 용서할 거라고. 다만 성깔이 좀 있는 거지.”
구재이는 오빠의 숨은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사이 너무 지쳐 있었던 그녀는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마음이 풀렸다. 가족과 몇 마디 나눈 뒤, 방으로 들어가 쉬었다.
방은 떠나던 그때와 다를 바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제철 옷이 몇 벌 더해졌고 각종 보석과 장신구가 놓여 있다는 정도였다. 그 물건들을 보니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이 빠진 적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가가 다시 붉어졌고 가슴 한켠이 찌르르하게 아려왔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시누이’라 표시되어 있었다. 민지환의 여동생, 민지연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지금 어디야? 신혼집에서 나갔다며? 그럼 우리 오빠가 준 목걸이는 어디로 가져간 거야? 교양 같은 게 없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도둑질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당장 돌려줘.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해서 잡아갈 거야!”
민지연의 목소리는 유난히 날카로웠다. 구재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가 말한 ‘목걸이’를 곰곰이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목걸이가 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다만 예전 민지연과 민지환에게 건넸던 자신의 선물들부터는 먼저 돌려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을 한때 진짜 가족이라 여겼기에, 선물을 고를 때도 유난히 값비싸고 살뜰한 것들만 골랐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건 어리석을 때 저지른 실수였다. 이제 그 실수를 바로잡을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