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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20억짜리 가치

구재이는 민지연의 전화를 단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바로 끊었다. 이제 그 집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인데 굳이 그들의 전화를 받아줄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 가족 전원의 연락처를 모두 차단했다. 번호부에 남겨둔 연락처 하나 없이, 전부 삭제했다. 원래도 서로 연락하는 방법은 전화뿐이었고 심지어 민지환의 가족은 구재이의 진짜 신분조차 몰랐다. 이제 연락 수단이 완전히 끊겼으니 그들은 더 이상 구재이에게 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과거와 완전히 선을 긋기 위해 구재이는 자신이 쓰던 번호마저 버리고 새 번호로 바꿨다. 가족들은 오히려 그걸 반겼다. 그녀가 과거의 모든 일을 잊고 새 출발 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안에서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쳐 두었다. 이틀 동안 푹 쉬자 지쳐 있던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생각해 봐, 너 그동안 재벌가 외동딸도, 가문 후계자 자리도 다 내던지고 그 남자 옆에서 아내랍시고 얼마나 고생했어. 보도 봤지? 요 며칠 민지환이 그 여배우랑 스캔들이며 뭐며 얼마나 떠들썩한데, 나 진짜 속이 뒤집힌다니까!” 최근 이세희의 스캔들 보도가 점점 커지자 언론은 민지환을 함께 끌어들였다. 결국 그는 여론의 중심에 섰고 회사 주가도 연일 폭락했다. 주리아는 그 뉴스를 볼 때마다 통쾌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남자 때문에 오랫동안 상처받은 구재이를 생각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눈이 멀었던 거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제는 다 봤어. 그럼에도 나한테 화낼 거야?” 어리석었던 과거를 깨닫고 난 구재이는 분노하는 친구와 맞서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고개를 숙이고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했다. 그 반응은 주리아에게 의외였다. 당황한 그녀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어색한 기운을 달래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진심으로 반성한다면야 됐어. 근데 말이야... 뉴스 사진 봤는데 민지환 손목에 차고 있는 그 보석 팔찌, 어디서 많이 봤다 싶더라. 그거... 아주머니가 예전에 너한테 물려주신 그 목걸이로 만든 거 아니야?” 주리아는 휴대폰 사진을 확대했다. 민지환 손목에 걸린 팔찌는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었고 빛깔 또한 고급스러웠다. 한눈에 봐도 값비싼 물건이었다. 오랜 친구인 주리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팔찌는 구재이가 자신의 물건을 이용해 만든 것이란 걸. 구재이는 사진을 흘긋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보석을 팔찌 크기로 세공했을 당시에도 이미 20억 원대의 가치가 있었다. 세공 후에는 다소 가격이 떨어졌지만 지금쯤이면 오히려 시세가 더 올랐을 것이다. 다른 건 다 잃어도 상관없지만 그 팔찌만큼은 꼭 되찾아야 했다. 그건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었고 절대 민지환 손에 두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그 팔찌가 민지환의 손을 거쳐 이세희에게 닿았다고 생각하니 구재이는 속이 울컥하고 역겨웠다. “오늘 오후에 약속 없지? 없으면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줄래? 그 집에 아직 내가 두고 온 게 있거든. 다 찾아올 거야.” 주리아는 오후에 볼일이 있어 처음에는 고개를 저으려다가 뒤쪽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반짝였다. “물론 없지! 지금이라도 가자. 바로 출발하자고!” 구재이는 피식 웃었다. 이렇게까지 구경하고픈 생각이 가득하다면 바로 가야지 싶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각의 고급 차를 몰고 출발했다. 구재이가 앞서 길을 이끌고 주리아가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구재이의 차가 한 별장 앞에 멈췄다. 주리아는 멍하니 서서 그 집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이렇게 작은 집에서... 힘들게 살았단 말이야?” 구재이는 무의식적으로 뒤돌아보았다. 마당이 딸린 4층짜리 저택, 이걸 보고 작은 집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일반 사람이라면 평생을 바쳐 일해도 계약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울 정도의 집이었다. ‘뭐, 최상류층 집안 출신들에게는 이 정도 규모가 작은 집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너 그때 진짜 제정신이었어?” 주리아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재이가 왜 스스로 이런 고생을 택했는지 그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에 미쳤다. 구재이가 그런 선택을 한 건 결국 ‘사랑’ 때문이었다. ‘그래, 사랑이라는 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야. 결국 고통만 남기잖아?’ 주리아는 몸서리쳤다. 사랑이 이런 고통을 안겨준다면 자신은 절대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별장을 불만스럽게 훑어보며 말했다. “얼른 가서 네 물건 챙기고 나가자. 시간 아깝게 여기 오래 있을 필요 없잖아.” 오늘 민지환이 집에 있을지는 구재이도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이 남겨둔 물건들을 전부 되찾아갈 작정이었다. 곧 그녀는 주리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 비밀번호는 아직 바뀌지 않았기에 구재이는 아무렇지 않게 코드를 눌러 문을 열었다. 순간, 거실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얼어붙었다. 특히 한정미, 그녀는 구재이가 불쑥 들어오는 걸 보고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감히 여길 다시 들어와? 너 내 아들이랑 이미 이혼했잖아! 내 아들이 그러더라, 넌 빈손으로 나갔다고! 그런데 지금 와서 뭐 하자는 거야, 재산이라도 나눠 달라는 거야? 꿈도 꾸지 마! 우리 집 거, 단 한 푼도 줄 생각 없으니까!” 구재이는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한정미는 벌써부터 자기 혼자 상황을 단정 지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구재이가 재산을 노리고 왔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들이 힘들게 일궈온 걸 그 여자가 조금이라도 가져가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구재이는 한정미의 말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다가가 한정미의 목에 걸려 있던 붉은 루비 목걸이를 그대로 손으로 풀어 들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행동에 한정미는 멍해졌다. 몇 초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손을 뻗어 목걸이를 되찾으려 했다. 그러나 구재이가 재빠르게 한 걸음 물러나자 손이 허공을 가르며 한정미는 그대로 중심을 잃을 뻔했다. “이 미친... 감히 내 물건을 훔쳐? 죽고 싶어? 너 우리 집 문은 평생 다시 밟지도 못할 줄 알아! 그리고 내 아들이랑 재결합할 생각도 하지 마!” 모두가 알고 있었다. 구재이가 민지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그래서 언제든 ‘민지환’이라는 이름만 꺼내면 그걸로 구재이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구재이는 손에 쥔 루비 목걸이를 잠시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주리아에게 건넸다. 주리아는 준비해 온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구재이는 목걸이를 그 안에 조심스레 넣었다. “이 루비 목걸이, 제가 시집오던 날 갖고 온 혼수예요. 오늘 돌려받으러 왔고요.” 그녀는 똑바로 한정미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어머님 말씀처럼 전 어머님네 집 물건에는 손 안 대요. 하지만 제 물건은 가지고 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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