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노골적인 강탈
구재이의 말은 전혀 예의를 차리지 않은 말이었다. 그런데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자기 물건을 되찾는 것뿐인데 남이 무슨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이 끝나자 한정미는 분노로 인해 몸을 떨었다.
“네가 자발적으로 준 거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돌려달라고? 이미 준 건데 다시 갖고 가는 게 어딨어, 말도 안 돼!”
한정미는 명백히 그 물건을 내어주기를 거부했다. 비록 구재이를 자기 마음속의 이상적인 며느리로 여기지는 않지만 구재이가 준 물건들은 자신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었다.
특히 구재이가 선물한 붉은 루비 목걸이는 몇 해 전 외출했을 때 사람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고 자신 목에 걸린 그 목걸이를 본 이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한정미가 가장 신경 쓰는 건 타인의 시선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목걸이를 칭찬하고 부러워할 때 그녀는 당연히 기뻤다.
그래서 구재이가 목걸이를 돌려달라고 하자 제일 먼저 반대했던 것이다.
그 집안 사람들의 민낯은 구재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바였다. 한정미가 그 목걸이를 내놓지 않으려는 태도도 구재이의 예상 범위 안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구재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물건을 되찾을 작정이었다.
그들이 그 정도로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정미의 말은 파렴치하기 그지없었고 주리아조차 듣고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솔직히 한정미만큼 뻔뻔한 사람은 여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자발적으로 준 건 맞지만 재이한테도 자기 물건을 되찾을 권리는 있죠. 그래도 어른이니까 이 정도 예의를 보이는 거지... 안 돌려주시면 경고하는데 그냥 빼앗을 겁니다!”
주리아는 당시 구재이가 무모하게 민지환과 결혼하려 한 일을 절대 잊지 못했다. 그때 주리아도 몹시 분노했었다.
구재이가 자신의 물건을 되찾으려 하니 도리어 뻔뻔하게 나오는 한정미의 태도에 주리아는 더 화가 났다.
물건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되찾을 수 없다면 비정상적인 방법도 쓸 작정이었다. 노골적으로 빼앗아 오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말이었다.
목적만 달성되면 어떤 수단이든 주리아에게는 허용됐다.
한정미는 주리아의 경고에 더 격분해 몸을 떨었다. 평소 거만하게 굴던 한정미는 구재이 역시 늘 깔봤었다. 그런데 지금 구재이의 앞에서 주리아가 이런 식으로 말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곧 그녀는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팔을 들더니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주리아가 한정미의 팔을 공중에서 낚아채듯 붙잡아 제지했다.
“감히 나한테 손을 대려고 하는 거예요? 난 참을 사람이 아니거든요? 오늘 나한테 손대면 병원 신세 지게 될 줄 알아요.”
뻔뻔한 상대에게는 더 뻔뻔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정미는 주리아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보고 속으로 불안해졌다. 하지만 이미 손은 주리아에게 꽉 잡혀 있었고 빼낼 수도 없었다.
“네 친구가 이렇게 나한테 대드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거야? 얼른 손 좀 놓으라고 해. 안 그러면 내가 지환이더러 제대로 혼내주라 할 거야!”
주리아에게 손을 쓸 수 없다 보니 한정미는 결국 시선을 구재이에게 돌렸다. 그녀는 구재이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구재이는 주리아를 한 번 보고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구재이는 조용히 앞으로 두 걸음 다가섰다. 주리아는 아주 능숙하게 협력하며 한정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경험으로 둘의 호흡은 완벽했다.
지금 구재이가 직접 행동에 나서자 주리아는 무척 기뻤다.
그렇게 구재이는 한정미의 앞에 섰다. 한정미는 여전히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빨리 손 좀 놓으라고 해. 너희같이 천한 것들이 감히 내게 덤빈다고? 어쩌다 감히 이 집에 들어온 거야? 내가 나중에 경호원 불러서 두 사람 제대로 혼내줄 줄 알아!”
“이것들이, 제정신 맞아? 천한 년들, 평생 그렇게 천하게 살겠지. 남의 집에 함부로 쳐들어오다니, 정말 부끄러움도 모르는구나?!”
“그리고 너 우리 집 물건 훔쳐 갔잖아. 구재이, 당장 그거 내놔. 안 그러면 우리 집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삼을 테니까. 넌 감당 못 할걸?”
한정미의 욕설은 점점 거칠어졌고 말미에는 협박성 발언까지 나왔다.
주리아는 그 협박을 듣고 비웃음을 터뜨렸다.
‘감히 날 협박해? 요즘 누가 감히 이렇게 뻔뻔하게 위협을 한다고...’
“예전에 나 협박했던 사람들이 지금 다 어디 있는지 알아요?”
주리아가 갑자기 입을 열어 한정미의 말을 끊었다. 한정미가 흘끗 쳐다보자 주리아는 눈을 휙 굴리며 무시하듯 했고 한정미는 그 ‘사람들’ 어디 있는지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녀가 원하는 건 단지 손을 빼는 것뿐이었다.
“전에 날 협박했던 사람들, 벌써 무덤 속에 들어갔어요. 아줌마도 한 번 해볼래요?”
이 말에 한정미는 잠깐 멈칫했다. 주리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본 것이다. 주리아는 농담조가 아니라 진지한 얼굴이었다.
‘진짜인가? 진짜 손을 쓴 건가?’
그 사이에 구재이는 한정미를 지나쳐 계단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한정미는 이 광경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어 구재이를 막으려 했지만 구재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이 집에서 지난 세월 동안 좋은 거 참 많이도 누리셨나 보네요? 그거 다 자진해서 내놔요. 나 화나게 하지 마시고요. 나 화나게 하면 좋은 꼴 볼 리는 없을 겁니다. 특히 몇 년 동안 내 친구 괴롭힌 거 생각하면...”
주리아도 진짜 화가 났다. 오늘 한정미의 태도를 보며 구재이가 이 집에서 얼마나 모진 일을 겪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저렇다면 민지환의 태도도 뻔한 거 아니냐는 생각에 주리아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오늘같이 구재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분명 손찌검이라도 했을 것이다.
“다들 눈멀었어? 지금 이 여자가 나한테 협박하는 거 안 보여? 얼른 손 놓으라고 해!”
한정미는 구재이가 위로 올라가는데도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자 급히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 소리쳤다. 곧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려는 순간, 주리아는 단 한 번의 눈빛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감히 누가 올라가는지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