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문서아가 사실상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박태윤의 눈빛은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박태윤은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
“사당에 가둬. 스스로 반성하게. 내 허락 없이는 절대 내보내지 마.”
“싫어.”
문서아가 한 걸음 물러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사당, 다시는 날 가둘 생각 하지 마.”
문서아는 돌아서서 도망치려 했다.
“잡아.”
박태윤이 짧게 지시했다.
경호원들이 곧바로 길을 막아섰다. 문서아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정신없이 뒤로 달아났고, 그 순간 샴페인 잔이 가득 실린 카트를 밀고 오던 직원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와장창!
거대한 충돌음과 함께 유리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문서아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세게 나뒹굴었고 온몸 위로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쏟아졌다.
“아악!”
살을 찢는 듯한 통증에 문서아는 비명을 질렀다. 피가 순식간에 아래로 번져 바닥과 반짝이는 파편을 붉게 물들였다.
문서아는 제 몸에 묻은 피와 박힌 유리 조각들을 보다가, 얼굴빛이 변해 버린 박태윤을 올려다봤다.
그대로 의식이 까맣게 잠겨 들어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온몸이 붕대로 감겨 있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이 몰려왔다.
침대 옆에는 최현우가 서 있었다. 말투는 지나치게 사무적이었다.
“사모님, 깨어나셨군요. 박 대표님께서 전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에 사모님께서도 사고로 크게 다치셨고, 봉합도 많이 하셨으니... 사모님과 조가희 씨 사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나가.”
문서아가 눈을 감은 채, 쉰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최현우는 잠깐 멈칫했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병실을 나갔다.
문서아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봤다. 심장은 이미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고요했다.
‘없던 걸로 친다고?’
조가희의 그 정도 화상과 상처 때문에 문서아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고통을 없던 일로 치겠다고 했다.
참... 공평했다.
문서아는 울지도 않았고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혼자서 상처를 버텼다. 혼자 치료를 받고, 혼자 밥을 먹고, 통증을 삼키며 몸이 낫기만을 기다렸다.
퇴원한 뒤에는 박씨 가문 가족 모임이 있었다.
식탁 위에서 임정숙은 여전히 문서아에게 좋은 얼굴을 하지 않았다. 말끝마다 아이 이야기뿐이었다.
“3년이야. 네 배는 여전히 조용하고. 박씨 가문이 대체 왜 널 며느리로 들였는지, 아직도 몰라?”
임정숙은 문서아 앞으로 비단 상자를 밀어 놓았다. 상자 안에는 백옥으로 된 송자관음이 들어 있었다.
“이건 가져가서 매일 모시고 진심으로 빌어. 더는 날 실망하게 하지 말고.”
문서아는 그 관음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손을 뻗을 생각이 없었다.
문서아는 애초에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더더욱 박씨 가문을 위해 아이를 낳고 싶지도 않았다.
식사가 끝난 뒤, 문서아는 그 상자를 집어 들었다. 눈앞에서 치우고 싶어 사당에 갖다 두려 했다.
사당 문 앞에 다다르자, 옆에서 조가희가 불쑥 나타나 길을 막았다.
“어머, 우리 존귀하신 박씨 가문 사모님 아니세요?”
조가희가 비웃듯 말했다.
“이제는 신에게 빌기까지 해요? 아이 낳고 싶어서?”
조가희는 눈빛을 번뜩이며 독하게 덧붙였다.
“내가 먼저 낳을 거예요. 박씨 가문 첫 아이는 내가 낳아야 해요.”
문서아는 대꾸할 힘도 없어서 조가희를 지나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조가희는 문서아가 자신을 무시하자 더 화가 났다. 조가희는 문서아 손에 들린 상자를 낚아채 바닥에 내리쳤다.
쨍그랑.
백옥 관음이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흩어졌다.
문서아는 깨진 조각들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어차피 문서아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문서아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던 탓인지, 조가희는 마치 주먹을 허공에 휘두른 것처럼 더 분해 보였다. 조가희는 문서아를 노려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서아 언니도 이제 알잖아요. 박태윤이 좋아하는 건 저고, 언니랑 결혼한 건 그냥 나 대신 욕받이로 세워 둔 거죠.”
조가희의 눈동자에 악의가 번뜩였다.
“그럼 내가 하나 알려 줄까요? 이 사당을 불태우고, 언니가 한 짓이라고 하면... 박태윤은 누굴 믿을까요? 그리고 언니를 어떻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