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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성혜란의 당당하고 의연한 말을 들은 임수아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뭐야? 이게 사과라고? 이건 명백히 책임을 추궁하는 거잖아!’ 임수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성혜란은 또다시 말을 이어갔다. “됐어, 저녁에 시혁이 데리고 같이 식사하러 와.” 임수아의 얼굴은 차가웠다. “시간 없어요.” 이 말을 들은 성혜란은 다시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아직도 불만이야? 왜? 이 엄마가 직접 네게 사과해야만 속이 후련해지겠어?” 성혜란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안 오고 싶다는 거지? 좋아! 그럼 돌아오지 마! 능력 있으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수아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휴대폰을 쥔 손이 미묘하게 떨렸다. 그녀는 눈을 꼭 감으며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이 일에 흔들리지 말자고 애써 다짐했다. ‘신경 쓰지 않으면 힘들지 않을 거야.’ “아가씨, 가정법원에 도착했어요.” 기사님의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 임수아는 정신을 차렸다. “감사합니다.” 요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린 그녀는 절뚝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어제 차에서 뛰어내린 후, 그녀의 발 상태는 더욱 악화했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가정법원 로비에 들어가 번호표를 뽑자마자 세렌빌의 가정부가 그녀와 윤시혁의 혼인관계증명서를 가져왔다. 혼인관계증명서를 손에 쥔 채 의자에 앉아 있던 임수아는 휴대폰을 꺼내 윤시혁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 순간, 가정법원 입구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얼굴은 빼어나게 잘생겼고 그가 서 있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윤시혁의 차가운 눈빛은 임수아에게 고정되었다. 그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임수아의 앞에 다가가 멈춰 선 후에야 그는 비로소 그녀의 왼쪽 광대뼈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윤시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제 정말로 다쳤던 건가?’ 윤시혁이 온 것을 본 임수아의 얼굴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전에 구청으로 갔을 때의 마음가짐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윤시혁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꿔왔던 그녀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고 이제야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전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몇 분 안 지나자 바로 그들의 차례가 왔다. 둘은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두 걸음 정도 내디딘 순간, 윤시혁의 휴대폰이 울렸다. 윤시혁은 휴대폰을 확인하고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시혁아, 빨리 본가로 와! 할머니께서 발작을 일으키셨어!” 전화기 너머, 다급한 하경림의 목소리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이 말을 들은 윤시혁의 표정은 바로 변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전화를 끊은 그는 임수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할머니께서 발작을 일으키셨어!” “뭐라고요?” 이 말을 들은 임수아는 평온하던 얼굴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발을 절며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다. 임수아의 다리를 본 윤시혁의 눈빛이 깊어졌지만 2초 만에 정신을 차리고 가정법원을 뛰쳐나갔다. 윤씨 가문의 본가에 들어선 그들은 곧바로 한효진의 방에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한효진의 얼굴은 창백했고 마치 손만 대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이런 한효진을 보며 임수아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변 선생님, 할머니는 괜찮으신 거예요?” 임수아가 물었다. “일단 상태는 안정되셨습니다.” 변석구는 말을 마치고 윤시혁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평소에 주의하셔야 할 점 외에도 절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주세요. 스트레스는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키고 호흡을 빨라지게 해 기도의 과민 반응을 일으켜 천식 발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변석구의 설명을 듣고 윤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주의 사항을 전한 변석구는 가방을 들고 방을 나갔다. 윤시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하경림에게 물었다. “엄마, 할머니께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신 이유가 뭐예요?” 하경림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방금 위에서 내려오는데 어머니께서 소파에 앉아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헐떡이시는 거야. 깜짝 놀라서 천식약을 가져왔는데 몇 번 뿌리시더니 기절하셔서 바로 주치의를 불렀지.” 윤시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효진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한효진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방 안에 머물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효진이 눈을 떴다. 첫 번째로 눈을 뜬 한효진을 발견한 건 임수아였다. 그녀는 바로 침대 앞으로 다가가 부드럽게 물었다. “할머니, 깨어나셨네요?” 이 말을 들은 윤시혁과 하경림도 다가왔다. 임수아를 본 한효진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손을 내밀어 임수아의 손을 잡았다. 임수아는 재빨리 한효진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할머니, 하실 말씀 있으세요?” “수아야, 너 또 다쳤니?” 한효진은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보았고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임수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그냥 넘어져서 다친 거예요. 큰일 아니에요.” 이 말을 들은 윤시혁은 임수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새까맣고 깊은 눈동자 속엔 감출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한효진은 임수아를 나무라는 듯이 말했다. “참, 왜 이렇게 조심하지를 않니.” 임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젠 괜찮아요!” 그러고는 화제를 돌렸다. “할머니는 어쩌시다 갑자기 발작이 오셨던 거예요?” “맞아요, 어머니, 오늘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하경림은 다가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경림은 아까 발작을 일으키던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했다. 한효진은 하경림에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구나.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이제 괜찮아.” 그러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윤시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갑자기 서은채가 돌아온 걸 생각하니 시혁이가 혹시라도 정신 못 차리고 우리 수아와 이혼하려고 할까 봐 걱정됐어. 그런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 감정이 격해졌던 거야.” 이 말을 들은 임수아와 윤시혁의 얼굴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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