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왜 그래? 왜 둘 다 아무 말도 안 하니?”
둘의 침묵을 본 한효진은 다급하게 물었다.
“설마 진짜 이혼할 생각이었던 거야? 나, 헉, 헉...”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효진의 호흡이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윤시혁은 당황하며 한효진을 달랬다.
“아니요, 할머니! 저희 이혼 생각 전혀 없어요! 진정하시고 천천히 숨 쉬세요.”
이 말을 들은 임수아는 윤시혁을 깊게 바라보았다.
단지 한효진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일 뿐이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수아야.”
한효진은 다시 임수아를 불렀다.
“네, 할머니.”
한효진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이 할미는 너만 손녀 며느리로 인정해. 시혁이가 네게 잘못하면 꼭 할머니한테 말해. 내가 혼내줄 테니까!”
한효진의 말에 임수아의 가슴은 따뜻한 물결로 휩싸였다.
‘진심으로 할머니께 감사하지만 이제야 깨달은 것이 있어. 나의 것이 아닌 것은 아무리 억지로 붙잡아도 결국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걸.’
사랑은 가장 억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효진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음에 없는 말을 해야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시혁 씨 저한테 잘해줘요. 저희 잘 지내고 있어요.”
한효진은 그제야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한효진은 정말 피곤했는지 곧 다시 잠이 들었다.
그들이 방을 나왔을 때, 윤시혁이 말했다.
“엄마, 수아랑 할 말이 있어서 우리 방으로 갈게요.”
그는 임수아의 손을 잡았다.
“아!”
왼팔을 잡힌 임수아는 통증을 참으며 소리를 질렀다.
윤시혁은 깜짝 놀라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임수아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지나쳐 방으로 향했다.
윤시혁의 눈빛이 깊어졌다. 2초간 망설인 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녀를 따라갔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자마자 윤시혁이 물었다.
“다친 건 어떻게 된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쉬어 있었으며 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임수아는 비웃듯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시혁 씨가 신경 쓸 일 아니에요.”
윤시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몇 초 후,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우리 이혼은 잠시 보류하자.”
그의 말을 들은 임수아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우선 절차는 밟아둬요. 할머니께는 말하지 않을게요. 연기도 협조하고요.”
윤시혁은 그녀를 흘끗 보았다.
“우리가 막 가정법원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께서 발작하셨고 우리를 보시자마자 그런 말씀을 하셨지.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임수아는 잠시 멈칫했다.
윤시혁은 계속 말했다.
“할머니께선 가정법원에 아는 사람이 분명히 계셔. 우리가 가기만 하면 바로 알게 되시는 거야.”
임수아는 침묵했다.
잠시 후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시간 내서 할머니께 설명해 드릴게요.”
윤시혁은 예상치 못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밀려왔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
“그럼 더 좋고.”
임수아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윤시혁은 가늘게 눈을 감았다.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전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의 말투는 엄청 공손했다.
“어젯밤 내가 떠난 후 임수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말은 마친 윤시혁은 전화를 끊었다.
한편, 방금 방을 나온 임수아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는 작은 발코니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네, 아빠.”
상대는 그녀의 아버지 임정민이었다.
“수아야, 오늘 저녁에 윤시혁 대표님과 함께 식사하러 와.”
임수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녀는 덤덤한 말투로 거절했다.
“됐어요. 엄마가 제가 나가면 다시는 그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언제 그런 말을 했어?”
임정민은 웃으며 말했다.
“너도 네 어머니 성격 알잖아. 말은 험해도 마음은 여린 사람이야. 그때 화가 나서 한 말일 뿐이지.”
임수아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제가 엄마 눈 밖에 나는 것보다는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빠, 전 이만 끊을게요.”
그녀는 임정민이 말을 잇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임수아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난간에 기대어 눈을 감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켰다.
윤시혁의 비서는 그날의 일을 빠르게 조사했다.
“대표님, 어젯밤 사모님은 대표님과 헤어진 후 택시를 타셨지만 그 택시는 불법 차량이었습니다. 위하로에서 사모님이 차에서 뛰어내리셨고 지나가던 운전자가 병원으로 데려다주며 신고했습니다.”
비서의 보고를 들은 윤시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에서 뛰어내렸다고? 그러면 그때 병원에 있다고 전화한 건 진짜 다쳤기 때문이었나?’
“경찰은 뭐라고 했어?”
“현재 추적 중이고 단서를 찾은 상태라고 합니다.”
윤시혁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상처는?”
비서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왼쪽 손이 탈구됐고 왼쪽 발목 관절이 심하게 접질렸습니다. 몸 여기저기엔 연부 조직 손상도 많고요. 하지만 오늘 아침 사모님께서 스스로 퇴원 수속을 하셨습니다.”
윤시혁의 동공이 흔들렸다.
“알았어.”
전화를 끊은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한편, 서씨 가문에 있는 서윤미는 과일을 씻어 서은채의 앞에 내려놓았다.
“언니, 과일 먹어.”
서은채는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 생각 중인듯 했다.
그 모습을 본 서윤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형부 생각 중이야?”
서은채는 고개를 들며 입술을 깨물었다.
“윤미야, 시혁이가 임수아랑 이혼할까?”
그녀는 자신이 없었다.
서윤미는 웃으며 서은채의 어깨를 토닥였다.
“안심해. 형부는 분명 이혼하고 언니랑 결혼할 거야. 어제도 언니 발 아프다고 하자 바로 달려오지 않았어? 그리고 임수아가 형부를 부르려 했지만 완전히 무시당했잖아. 그걸로도 형부 마음속에 언니가 더 중요하다는 증명이 되지.”
서윤미의 미소는 더욱 깊어졌다.
“게다가 형부는 아직도 그때 납치 사건에서 자신을 구한 게 언니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이런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