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3화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미 박씨 가문의 저택에 돌아와 있었다. 박훈이 침대 옆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킨 듯했다. 그는 죄책감을 띤 채 말했다. “하영아, 다 내 잘못이야. 그 사진들은 이미 전부 처리했어.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앞으로는 밖에 나가기 싫으면 안 나가도 돼. 다시는 네게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을게. 평생 집에만 있어도 괜찮아. 내가 곁에 있을게.” 가슴속에 씁쓸함이 가득 차올라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 이게 바로 박훈의 진짜 목적이지. 내가 평생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길 바라는 거지... 그래야만 심영지 앞길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테니까...’ 입을 열려던 순간 방문이 갑자기 열리며 심영지가 들어왔다. 심영지가 나타나자마자 박훈의 시선은 단숨에 그녀에게로 향했다. 눈빛은 부드럽고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내가 그동안 눈이 멀었던 게 분명했다. 박훈이 사랑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렇게 뻔한데도 몰랐으니까. 나는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김혜란이 심영지를 따라 들어오더니 내 말을 듣자마자 가느다란 눈썹을 치켜올렸다. “영지가 네가 쓰러졌다는 소식 듣고 걱정돼서 일부러 온 건데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참, 가정교육이 문제야.” 심영지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언니도 오늘 경매장에서 많이 놀랐어요. 전 괜찮아요. 이젠 익숙해요.” 그 말에 김혜란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우리 박씨 가문은 대대로 깨끗하게 살아왔어.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상스럽고 추잡한 일에 엮이다니... 집안의 불행이 따로 없구나.” 김혜란은 심영지의 손을 꼭 잡았다. “영지야, 너 같은 아이를 며느리로 맞이하는 집은 정말 복 받은 거야. 아쉽게도 우리 훈이에게는 그런 복이 없네...” 박훈은 속내를 숨긴 채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심영지가 나와 단둘이 할 말이 있다고 말하자 박훈과 김혜란은 곧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토끼같이 순한 표정을 짓던 심영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 손가락에 낀 챔피언 반지가 눈부시게 빛났다. 그걸 본 나는 동공이 흔들렸다. 그 반지는 무용계 최고의 영예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당당히 무대 위에 서서 저 반지를 끼기 위해서 나는 20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춤만 췄다. 하지만 결승 무대 당일에 나는 박훈의 사람들에게 납치당했다. 그리고 그 반지는 지금 심영지의 손에 끼워져 있었다. 내 시선이 반지에서 떨어지지 않자 심영지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언니, 이 반지 예쁘지? 엄청나게 갖고 싶었지? 그런데 어쩌지? 설령 언니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해도 사람들이 보는 건 언니의 춤이 아니라 몸이야. 그 몸으로 어떤 자세들을 취하는지 더 궁금해할걸... 그런데도 나랑 경쟁할 거야?” 심영지는 고개를 기울이며 혀를 찼다. “아, 맞다. 아직 말 안 한 게 하나 있어. 언니가 끌려갔던 장소가 내가 경기하던 공연장까지 겨우 오백 미터밖에 안 떨어졌어. 사실은 언니를 구할 수 있었어. 근데 사람들의 환호성이 너무 커서 언니의 비명이 묻혀버렸어. 생각해 보면 좀 아쉽네. 언니는 뭐든 최고였잖아. 목소리도 참 좋았으니 그 비명 소리는 아주 듣기 좋았을 텐데...”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입 닥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 안에서 날카로운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내가 때린 게 아니라 심영지가 스스로 뺨을 세차게 때린 것이었다. 내가 멍하니 서 있는 사이 누군가 그녀를 뒤에서 붙잡았다. 심영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형부, 언니를 탓하지 마요. 내 잘못이에요. 내가 언니를 화나게 했어요.” 그녀의 붉게 부은 뺨을 박훈의 눈빛에는 가득한 연민으로 가득 찼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 영지를 때리지 않았어요.”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박훈이 심영지를 위해 나한테 뺨을 되돌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심영지를 안고 방을 나갔고 문이 거칠게 닫혔다. 그제야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얼굴을 감싼 채 울음을 터뜨렸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