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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서아진은 이 결과를 믿을 수가 없어 귀를 의심했다. 주여린의 디자인은 서아진도 봐서 아는데 일반적이다 못해 촌스럽기까지 해서 대상을 받을 감이 못 되었다. ‘왜? 도대체 왜?’ 서아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대회가 끝나고 주최 측을 찾아갔다. “여쭤볼 게 있습니다.” 서아진이 입을 열었다. “일 라운드 투표와 이 라운드 투표 모두 압도적으로 일위였는데 삼 라운드 투표가 비공개 투표고 주여린 씨가 만점을 받았다고 해도 저보다 표수가 높게 나올 리가 없어요. 그런데 왜 대상은 주여린 씨가 받은 거죠?” 주최 측 스태프가 서아진을 힐끔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서아진 씨.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투표 결과가 나오기 1분 전에 신 대표님이 100억을 투자하셨어요. 주여린 씨가 대상을 받는 조건으로 말이죠. 그래서 대상은 내정된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서아진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100억, 신지환이 주여린의 대상을 위해 쏟아 부은 돈은 무려 100억이다. 서아진이 이 대회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면서, 이 대회를 이기면 상이 따르지만 지면 벌이 따르는 걸 알면서 신지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긴, 신지환이 신경 쓰는 사람은 오직 주여린이었다. “죄송합니다.” 스태프가 말했다. “저희도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서아진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꼼짝도 못 하는데 주여린이 걸어왔다. “왜요? 져서 기분이 상했어요?” 주여린이 웃으며 말했다. “서아진 씨,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지환의 마음을 얻지 못한 거예요? 나는 손만 까딱해도 달려오던데.” 서아진은 그런 주여린이 역겨웠다. 주여린이 쓴 가면도 역겹고 맹목적인 신지환도 역겹고 어리석은 자신도 역겨웠다. “주여린 씨.” 서아진이 입을 열었다. “지환이 주여린 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요?” 주여린이 눈썹을 추켜세웠다. “당연하죠.” “알면서 왜 그러는 거예요?” 서아진이 주여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환을 고장 나면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 정도로 생각하잖아요.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니까 만만해요? 지환은 주여린 씨를 위해 모든 걸 바쳤는데 주여린 씨는요? 한번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한 적 있어요?” 주여린의 안색이 변했다. “서아진 씨.” “나는 지환이 불쌍해요.” 서아진이 말했다. “그런 사람을 바라보고 산 나도 불쌍하고요.” 서아진이 주여린을 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10년이에요. 10년간 나도 신지환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했어요. 그러니 불쌍할 수밖에요.” 그러더니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대회장 밖은 비가 내렸다. 우산을 챙겨 나오지 않은 서아진은 차가 잡히지 않아 처마 밑에 서서 덤덤한 표정으로 쏟아지는 비를 구경했다. 그때 차량 한 대가 지하 차고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지환의 차였다. 신지환이 차를 운전했고 조수석에 앉은 주여린이 무슨 말을 했는지 신지환은 웃으며 주여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는 서아진을 지나쳐 앞으로 내달렸지만 신지환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서아진은 차가 빗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고 심장이 난도질당한 것처럼 너무 아팠다. 다만 그 아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몸을 돌리는데 먼 곳에서 귀청이 째질 듯한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고 세게 부딪히는 소리까지 났다. 쾅. 서아진이 고개를 홱 돌렸다. 신지환이 탄 차가 역행하던 화물차와 부딪힌 것이다. 이에 서아진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고 거의 본능적으로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찌그러진 차에서 주여린이 혼자 기어 나왔다. 별로 다치지는 않았고 모양새만 조금 초라할 뿐이었다. 주여린은 전복된 차와 운전석에 앉은 신지환을 한번 쓱 훑고 몸을 돌리려는데 서아진이 잡았다. “뭐 하는 거예요? 사람 구해야죠.” 주여린이 서아진의 손을 뿌리쳤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나는 구해달라고 한 적 없어요. 지환은 어릴 적부터 그랬어요. 나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상관없는 애예요. 지금쯤 내가 무사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할지도 몰라요.” 주여린이 잠깐 뜸을 들이다 말을 이어갔다. “차가 곧 터질지도 모르는데 여기 남아있으면 나도 죽어요.” 그러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서아진은 귀를 의심했다. 멀어져가는 주여린과 차 안에 쓰러진 신지환을 번갈아보던 서아진은 이를 악물고 차로 뛰어가 안간힘을 써서 신지환을 끄집어냈다. 겨우 몇 미터 정도 끌어내는데 차가 굉음과 함께 폭발하며 화염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서아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몸으로 신지환을 보호했다. 그러다 불길이 등에 옮아 붙었고 서아진은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해 정신을 잃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병실이 아니라 시체 안치실이었다. 서아진은 차가운 부검대에 누워있었고 몸에 난 상처는 제때 치료하지 않아 너무 아팠다. 눈을 뜨자 비추는 새하얀 섬광에 서아진이 다시 눈을 찡그리는데 코끝에 포르말린 냄새가 확 풍겼다. 그리고 한쪽에는 그런 서아진을 지켜보는 신지환이 보였다. 문가에 선 신지환은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눈동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서아진.” 신지환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내가 권력으로 주최 측에 투자해서 여린에게 대상을 준 걸 알고 백스테이지에서 여린을 모욕한 것도 모자라 죽이려고 내 차에 손까지 댔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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