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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한 시간이 넘는 설명을 마치고서야 성지태가 묵고 있는 별장으로 데려다줬다. 성지태는 심민지를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 “참을성도 좋은데? 추워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히터를 켜지 않다니. 지금 내 앞에서 가여운 척하는 거야?” 그는 그녀가 추위에 떨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부러 연약한 척해서 그의 관심을 끌려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심민지는 성지태에게 꼬투리 잡힐 구실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것뿐이었다. 만약 성지태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차라리 히터를 켤 걸 그랬다. 심민지는 분노를 억누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저희 호텔은 규정상 고객님께서 온도 조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시면 직원은 온도를 임의로 조절할 수 없거든요.” 말을 마치고는 차에서 내려 성지태의 차 문을 열어준 다음 머리가 차 지붕에 부딪히지 않게 매너 손까지 했다. “도착했습니다, 대표님.” 성지태는 심민지의 일련의 행동을 올려다봤다. 예상했던 행동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언짢았다. “노예근성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나 봐?” “이건 저의 일상적인 업무입니다.” 영업직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노예처럼 시중드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성지태 앞에서는 노예처럼 굴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만족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성지태가 원하는 건 심민지의 남은 자존심마저 모두 짓밟아버리는 것이었다. 마음대로 휘둘러야만 그의 우월감을 채울 수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웃을 듯 말 듯 했다. “프로페셔널하네. 좋아, 아주.” 그러고는 심민지를 밀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성지태가 방 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심민지는 경계를 풀고 재채기를 몇 번 시원하게 했다. 너무 지친 나머지 몸을 의자에 기댔다. 성지태를 상대하는 것만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심민지는 몸 상태가 더 나빠졌다. 손으로 이마를 만져보니 열은 없었지만 몸이 몹시 지쳐있었다. 원래 병가를 잘 내지 않는 편이라 대충 몸을 추스르고 출근했다.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던 중 옆자리의 도희라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들어오더니 갑자기 욕하기 시작했다. “성신 그룹 사람들 미친 거 아니야? 처음에는 말이 잘 통하더니 오늘은 대체 왜 그런대?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오늘은 성신 그룹이 호텔에서 회의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하여 이 팀을 담당했던 영업 직원은 오늘 모든 장부에 고객들의 서명을 받고 잔금을 확인해야 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 심민지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도희라는 욕을 다 퍼부은 후 성신 그룹 마케팅 총괄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왜 장부 서명을 거부하는지 물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하지, 왜 이래?” 도희라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사무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변석주도 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그쪽에서 아직도 사인 안 했어?” 도희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변석주에게 말했다. “처음 며칠 건은 다 사인했고 돈도 통쾌하게 줬어요. 그런데 어제 장부는 죽어도 사인 안 하는 거 있죠? 뭐 권한이 없다나 뭐라나. 권한이 없는데 전에는 어떻게 사인했대요?” 영업을 오래 하다 보면 별별 고객을 다 만나게 된다. 하여 사무실에서 고객을 욕하는 건 비일비재했다. 보통 계약서에 서명할 때 서명자가 명시되는데 지금은 상대방 측에서 도희라를 일부러 괴롭히고 있는 상황인 게 분명했다. 그녀의 말에 변석주는 뭔가 짐작한 듯 시선을 심민지 쪽으로 돌렸다. 심민지는 그녀 때문에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걸 가장 꺼렸다. 만약 잔금을 받지 못하면 호텔 법무팀이 소송을 걸 것이다. 아무리 호텔에 정해진 독촉 절차가 있다 해도 성신 그룹 같은 대기업과 척을 지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심민지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표정으로 변석주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문을 닫자마자 변석주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민지 씨, 어제 성 대표님과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심민지는 책임을 떠안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없었어요.” 어제 성지태의 시중을 완벽하게 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녀에게 불만이 많았던 사람이라 아무리 완벽해도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변석주는 도희라를 사무실로 불렀다. “희라 씨, 성신 그룹 마케팅 총괄이 어떻게 곤란하게 했는지 자세히 말해봐.” 그 말에 도희라는 또 화가 치밀었다. “원인을 알면 제가 이렇게까지 골치가 아프겠어요? 그 사람들은 성신 그룹 대표가 지금 우리 호텔에 있으니까 마지막 사인은 대표를 찾아가서 직접 받으라는 뜻인 것 같더라고요. 이건 일부러 절 괴롭히는 거잖아요. 제가 어디 가서 그 대표님을 찾아요?” 변석주의 시선이 다시 심민지에게로 향하더니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희라 씨, 서명할 장부 모두 여기에 두고 나가봐. 이제부터 이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성신 그룹 마지막 회의나 꼼꼼하게 챙겨.” 도희라가 이렇게까지 얘기한 이상 심민지는 이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고 변석주에게 말했다. “어제 접대는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아마 대표님이 원래부터 저한테 불만이 많았던 터라 일부러 곤란하게 하신 것 같아요. 동료한테 피해를 줘서 죄송합니다.” 변석주는 펜을 돌리며 심민지에게 물었다. “해결할 방법이 있어?” “모르겠어요.” 변석주가 장부를 심민지의 앞으로 밀었다. “동료를 더 곤란하게 하지 말고 민지 씨가 직접 찾아가서 서명받아오도록 해. 지금 별장에 계셔.” 수억 원짜리 장부를 내려다보던 심민지는 극도로 무력감을 느꼈다. “제가 직접 찾아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약혼녀도 옆에 계실 텐데.” “대표님 약혼녀랑 같은 방에 묵지 않아. 그리고 방으로 찾아가는 것 말고 또 다른 방법이 있어?” 정말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젯밤 술집에서 이미 체면이 깎일 대로 깎였다. 심민지도 체념한 듯했다. “제가 한번 가볼게요, 그럼.” 변석주가 엄숙하게 말했다. “민지 씨, 희라 씨는 성격이 급해서 이 일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야 해. 내 부하들이 작은 일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알겠습니다. 잘 처리할게요.” 돈을 받아내려면 성지태를 찾아가 애걸복걸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지태가 나타난 그 순간부터 심민지는 계속 그에게 뭔가를 빌고 있었다. 대체 그녀가 뭘 더 해야 성지태가 만족할 수 있을까? 심민지는 성지태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자존심까지 내려놓고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에 치마 밑단을 찢어 폴 댄스까지 췄다. 그 후에도 또 토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어제 하루 종일 노예처럼 시중을 들었지만 성지태는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힘이 있는 자가 사람을 괴롭히는 걸 그만둘 리 만무했다. 성지태는 그녀에게 전과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민지가 반항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더욱 마음대로 괴롭히는 것이었다. 심민지는 장부를 들고 성지태가 묵고 있는 별장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른 뒤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원격 제어로 문이 열렸고 심민지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3층짜리 별장이었다. 1층은 응접실, 2층은 식당과 비서 및 비서실장이 묵는 층, 3층이 메인 침실이었다. 소박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겼고 심지어 세면용품까지 명품이었다. 이 별장의 하루 숙박비가 무려 1600만 원이었다. 성지태가 4박을 묵기로 했으니 총 6400만 원이었다. 이 세상의 빈부 격차는 이토록 심했다. 심민지가 3년 넘게 뼈 빠지게 일해도 빚을 6천만 원도 갚지 못했는데 재벌은 며칠 만에 그 돈을 소비해버렸다. 하여 성지태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심민지를 짓밟을 수 있었다. 1층과 2층에 성지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심민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리엔 호텔 회의 영업 담당 심민지입니다.” 안에서 성지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심민지는 문을 열고 들어간 다음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대표님, 장부에 사인 좀 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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