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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바로 그다음 순간, 신유리는 심명준의 팔이 허지연의 허리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감싸는 걸 보았다. 심명준은 허지연에게 몸의 무게 대부분을 실어 주며, 달래듯 가볍게 나무랐다. “그러니까 그렇게 높은 굽은 신지 말라 했잖아.” 이 연회의 주인공이어야 할 신유리는, 두 사람의 친밀함을 과시하는 장면에 끼어 있는 들러리로 전락했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낮은 속삭임들이 신유리의 심장을 바늘로 찌르듯 아렸다. “둘 중에 누가 사모님이야? 항성의 마지막 진주라더니... 별거 없어 보이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사모님이고, 저쪽은 심 대표님의 새 애인이래.” “쯧쯧. 난 무슨 진짜 사랑이 돌아온 줄 알았지. 역시 새 애인이 낫나 봐. 게다가 사모님이 밖에 3년이나 있었다며? 어디서 뭘 했는지 누가 알아. 심 대표님도 더럽다고 생각해서 싫어진 거겠지.” 비열한 말들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심명준은 허지연과의 달콤한 분위기에 빠져 신유리의 창백한 얼굴도, 굳어 버린 표정도 보지 못했다. 신유리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더는 둘의 애정 행각을 바라보고 싶지 않아, 조용히 몸을 돌려 회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쿵!” 아래층에서 터져 나온 폭발음이 귀를 찢었다. 거대한 충격파가 깨진 유리 조각과 뜨거운 연기, 먼지를 한꺼번에 몰고 덮쳐 왔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에게 떠밀린 신유리는 크게 휘청했고, 쇄골 부근에 날카로운 통증이 번졌다. 튄 유리 파편이 신유리의 살을 찍고 지나간 것이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고개를 들자, 신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심명준을 찾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심명준이 반사적으로 신유리 쪽으로 달려오려 했다. 그 찰나, 신유리는 그래도 아직은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했다. “명준 오빠... 나 너무 무서워.” 허지연의 떨리는 목소리가 끼어들자, 심명준은 몸이 딱 굳었다가 그대로 허지연 쪽으로 돌아섰다. 심명준이 허지연을 끌어안고 방향을 틀어 버리는 순간, 신유리는 심장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를 또렷하게 들은 듯했다. 심명준은 재킷으로 허지연을 꽁꽁 감싸안고, 작은 몸을 품 안에 숨기듯 감싸며, 떨어지는 파편과 불꽃을 자기 몸으로 막아 냈다. 열기가 신유리의 피부를 태웠고, 쇄골의 상처에서는 피가 계속 배어 나왔지만 신유리는 아프지도 않았다. 신유리는 그저 안전구역을 향해, 허지연을 감싸 쥔 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떠나는 심명준의 뒷모습만 죽도록 바라봤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밀치며 도망쳤고, 누군가 신유리의 상처를 스치고 지나가자 신유리가 다시 비틀거렸지만, 끝내 쓰러지지 않았다. 모든 생각이 꺼진 느낌이었다. ‘아... 이게, 이런 기분이구나.’ 신유리는 문득 절벽에서 떨어지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신유리는 온 힘을 다해 심명준을 밀어내고 자신이 추락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다친 게 심명준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우습네.’ 피가 쇄골을 타고 옷깃으로 흘러내렸다. 그러자 끈적하고 차가운 감촉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신유리는 치맛자락을 찢어 한 조각을 떼어 내고, 상처 위를 거칠게 눌렀다. 신유리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불길과 연기 속을 빠져나왔다.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운 3년 동안, 신유리는 더는 심명준에게 기대야만 하는 연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인 건, 심명준이 멀쩡한 허지연을 안은 채 다정하게 달래는 모습이었다. “두려워하지 마, 지연아. 내가 여기 있잖아.” 신유리는 차갑게 그 장면을 바라보며, 온몸의 통증을 억지로 눌러 삼키고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낯선 번호로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심명준과 이혼하게 도와줘.] 그다음 순간, 신유리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몸 곳곳이 화상으로 상처 입어 두꺼운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고, 병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반쯤 열린 문틈은 바깥의 수군거림까지 막아 주지 못했다. “심 대표님은 허지연 씨한테 진짜 잘하더라. 본인도 화상이라던데 허지연 씨를 안고 검사실을 들락날락하던데?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봐 엄청나게 잘 챙겨주더라.” “정말 사람 팔자란 다르지... 안에 누운 분이 사모님이라며? 화상 면적이 30%라 반쯤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도 심 대표님은 얼굴도 안 비쳤대...”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 선 작은 칼이 되어 신유리의 마음을 조금씩 벗겨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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