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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잡종이라는 두 글자는 독이 묻은 바늘처럼 신유리의 가슴을 찔렀다. 그 순간, 신유리는 심장이 움찔거렸다. 신유리는 고개를 떨군 채 검사지를 봤다. 선명하게 임신 양성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곁눈질로 허지연의 입가에 걸린, 미처 숨기지 못한 득의의 미소를 확인하는 순간, 신유리는 모든 걸 알아차렸다. 신유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병원은 문제 있어. 난 임신하지 않았어.” 심명준의 얼굴은 그림자에 반쯤 묻혀 있었다. 그늘진 표정이 유난히 냉정하고 무표정했다. 심명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곧장 신유리의 팔을 잡아끌려 했다. “따라 와. 지금 당장... 애를 지워.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해 줄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신유리는 문득 약혼식 날을 떠올렸다. 심명준은 항성 언론 앞에서, 평생 신유리를 믿고 지키겠다고 당당히 약속했었다. 얼마나 우스운 약속이었는지. 신유리는 힘껏 손을 뿌리쳤다. 눈동자에는 서리가 내려앉은 듯 차가운 빛이 맺혔다. “임신이 아니라니까. 뭘 지운다는 거야?” 그때 허지연이 타이밍 좋게 심명준의 소매를 살짝 붙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 “명준 오빠, 유리 언니한테 조금만 시간을 줘. 엄마가 되려는 사람이... 자기 아이를 그렇게 빨리 포기할 수 있겠어?” 그 말은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격이었다. “신유리, 너 그렇게 그 잡종 새끼를 갖고 싶어?” 심명준은 신유리를 침대에서 거칠게 끌어 일으켰다. 턱을 세게 움켜쥐고, 억지로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심명준의 눈빛에는 질투와 증오가 엉겨 붙어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신유리가 다른 남자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며 웃었다는 상상만으로도, 심명준은 목이 죄어 오는 듯 숨이 막혔다. 심명준은 그 애만큼은 절대로 남겨 둘 수 없었다. 그때 허지연의 눈빛에 잠깐, 날카로운 질투가 스쳤다. 그렇게 오랜 세월 옆에 붙어 있으면서도 심명준이 이런 식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신유리!” 질투와 분노가 심명준의 이성을 집어삼켰다. “왜 너는 지연이처럼 좀 얌전하게 굴지 못해? 지연이가 예전에 내 애 가졌을 때도, 내가 곤란해할까 봐 말없이 혼자 지웠어. 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걸 희생하고도 원망 한마디 없었어. 그런데 너는? 잡종 새끼 하나도 포기 못 하겠다는 거야?” 말이 끝나자 병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심명준은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는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신유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끈적하고 지독한 구역감이 위장에서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신유리는 심명준의 손을 세차게 뿌리치고 침대 옆으로 몸을 굽혀 격하게 헛구역질했다. 마치 상처투성이가 된 심장까지 함께 토해 내고 싶은 것 같았다. 이미 내려놓기로 했는데도, 이렇게 적나라한 배신을 귀로 듣는 순간의 고통은 칼로 살을 한 겹씩 도려내는 것과 같았다. 심명준이 본능적으로 변명하려다가 신유리의 눈에 가득 찬 혐오를 마주치자 억지로 말을 바꿨다. “신유리,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얼굴을 해! 내가 지연이랑 함께 있는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네가 사라졌을 때, 난 밤낮없이 널 찾았어. 매일 술로 정신을 마비시키며 버텼고! 그때 지연이가 내 옆에 있었어. 날 붙잡아 주고, 내 버팀목이 돼 줬어. 난 술에 취해... 지연이를 너로 착각해서 실수한 거야! 그런데 넌? 내가 가장 괴로울 때 다른 남자랑 뒹굴더니, 잡종 새끼까지 배서 돌아왔잖아!” 신유리가 계속 헛구역질하는 모습을 보자, 심명준의 남아 있던 미안함 같은 건 분노에 삼켜졌다. 심명준은 문밖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사람 불러 당장 수술실로 데려가! 지금 당장 저 애를 처리해!”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다가오자, 신유리는 순식간에 몸을 뒤집어 탁자 위 과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허지연을 팔로 확 끌어당겨, 칼날을 목덜미에 정확히 눌러댔다. “임신 테스트기 사 와.” 신유리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 순간,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지금. 당장.” 피가 동그랗게 맺혀 붉은 구슬처럼 흘러나왔다. 허지연이 비명을 삼키듯 신음했다. 심명준은 이를 악문 채 분노를 억눌렀고, 경호원에게 눈짓했다. 당장 가져오라는 신호였다. 그 짧은 틈에 신유리는 한 손으로 휴대폰 화면을 미친 듯 두드렸다. [이명자 아줌마랑 아들이 안전한지 확인해 줘. 급해!] 신유리는 더는 이명자 아줌마가 심명준의 협박으로 쓰이는 카드가 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테스트기가 도착했다. 신유리는 허지연을 붙잡은 채 욕실로 물러섰고, 문을 닫자마자 반대로 걸어 잠갔다. 좁은 공간에서 허지연은 계속 떨며 애원했다. “언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입 다물어.” 신유리는 허지연을 벽에 눌러 고정하고, 다른 손으로 테스트기 포장을 뜯었다. 바로 그때, 휴대폰 화면이 번쩍이며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이명자와 아들이 크루즈 갑판에 나란히 서 있었다. 뒤로는 짙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신유리의 팽팽하던 신경이 그제야 아주 잠깐 풀렸다. 신유리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테스트기를 든 채 변기 앞으로 걸어갔다. 문밖에서 심명준의 거친 재촉이 들렸다. “신유리, 언제까지 질질 끌 거야!” 신유리는 손에 쥔 테스트기를 천천히,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변기에 던져 내려보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상처투성이가 된 자기 몸을 떠올리자,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신유리는 다시 한번 숨을 들이쉬더니 천천히 변기 앞에 쪼그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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