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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내가 전에 분명히 말했잖아. 지난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런데도 넌 사람까지 써서 지연이를 협박해?” 신유리는 심명준이 휘갈겨 쓴 서명을 만족스럽게 한 번 훑었다. 그리고 허지연의 뻔뻔한 표정을 보며, 오랜만에 기분 좋게 맞장구를 쳐 줬다. “협박?” 신유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과일 접시에 놓인 과도를 아무렇지 않게 집었다. 칼끝이 허지연의 뺨을 스치듯 지나가더니, 다음 순간 허지연 뒤쪽 벽에 깊숙이 꽂혔다. “똑똑히 봐. 이게 진짜 협박이지.” 허지연이 이혼 합의서에 서명을 받아오는 데 도움만 주지 않았어도 그 칼은 벽이 아니라 허지연 몸에 꽂혔을 것이다. 허지연은 이번에 진짜로 겁을 먹었는지 얼굴빛이 싹 가셨고, 온몸을 떨었다. 신유리는 이혼 합의서를 챙겨 들고 돌아섰다. 그때 등 뒤에서 심명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칼 들고 사람을 협박해 놓고, 이렇게 가 버리겠다는 거야?” 심명준이 한 걸음씩 다가왔다. 음울하게 가라앉은 눈빛은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신유리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심 대표님, 가슴이 아프셨어요? 난 그냥 시범만 보여 준 거야. 진짜로 협박했으면 허지연 씨는 지금 말도 못 했겠지.” “입만 살아서는.” 심명준은 신유리의 화상과 상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신유리를 거칠게 끌어 복도까지 질질 끌고 나갔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무릎 꿇어.” 신유리는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냉소했다. “내가 왜?” “방금 지연이를 칼로 협박했으니까.” 심명준의 시선이 날카로웠다. “심씨 가문에는 규칙이 있어. 잘못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해. 선택지는 두 개야. 첫째, 네가 스스로 무릎 꿇고 지연에게 사과해. 지연이가 용서할 때까지. 둘째...” 심명준이 잠깐 멈췄다가 더 차갑게 내뱉었다. “무릎은 안 꿇어도 돼. 대신 이명자 아줌마 모자는 지금 당장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신유리의 심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꽉 쥐인 듯 조여 왔다. 또 그 수법이었다. 심명준의 눈에 스쳐 지나간 미묘한 흔들림도 허지연의 훌쩍이는 울음소리에 곧 사라졌다. “좋아. 꿇을게.” 신유리의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신유리는 차갑고 단단한 대리석 바닥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무릎은 꿇었지만 등은 끝까지 꼿꼿했다. “허지연.” 신유리가 또박또박 말했다. “미안해. 남의 결혼에 끼어드는 뻔뻔한 상간녀 같은 널 내가 칼로 겁줬으면 안 됐어.” 주변에서 몰래 훔쳐보던 의료진의 귀에도 또렷이 들릴 만큼 신유리가 낮게 이어 말했다. “칼을... 네 심장에 꽂았어야 했는데.” “신유리!” 심명준이 폭발하듯 분노했다. 하지만 신유리는 심명준을 보지도, 더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복도 한가운데 무릎 꿇고 버텼다. 심명준은 신유리의 태도가 사과가 아니라 대놓고 도발이라는 걸 알아차렸고 이성이 완전히 끊어졌다. 심명준은 소매를 거칠게 털어내며 돌아서서 내던졌다. “정신 차리고, 진심으로 지연이한테 사과할 마음이 생기면 그때 일어나!” 신유리는 얼음장 같은 바닥 위에 무릎을 꿇은 채 버텼다. 의료진의 수군거림이 바늘처럼 신유리의 몸을 찔렀다. “저 사람이 심 대표님 아내 맞지? 왜 저기서 무릎을 꿇고 있어?” “허지연 씨를 협박해서 심 대표님한테 혼난 거래.” “예전에는 항성의 마지막 진주라면서... 사랑도 미움도 확실한 여자라더니, 결국 남자한테 이렇게 닳아 버렸네. 결혼을 지키겠다고 저렇게까지...” 그 말들이 신유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유리는 문득, 3년 전의 한 연회가 떠올랐다. 철없는 재벌 가문의 딸이 일부러 신유리 치마에 레드와인을 쏟아 버렸던 날, 심명준은 한마디도 길게 하지 않았다. 심명준은 와인병을 그대로 들어 그 여자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네가 감히 내 아내를 건드려?” 심명준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 여자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항성에서 꺼져.” 그때 신유리는 심명준의 등만 바라봐도 평생 기댈 곳을 얻은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의 심명준은 신유리가 무릎 꿇고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걸 냉정하게 방치하고 있었다. 신유리는 시야가 흐려지고 몸이 휘청거렸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신유리는 심명준이 허지연을 다정하게 부축해 병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봤다. 심명준은 신유리 쪽을 힐끗 보지도 않았다. 신유리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소리 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도 온몸의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신유리는 눈을 뜨자마자 심명준의 노기 서린 얼굴과 마주쳤다. “신유리!” 심명준이 검사 보고서 한 장을 신유리 앞에 거칠게 내던졌다. “네 뱃속에 든 그 잡종 새끼는... 도대체 누구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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