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심명준은 신유리를 3층 게스트룸에 가둬 두었다. 해 질 무렵, 허지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짙은 남색 남성 손수건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유리 언니.”
허지연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언니가 도망치던 날, 병원에 이걸 떨어뜨렸더라?”
신유리는 차갑게 눈을 들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남색 손수건이었다. 가슴 한쪽이 어처구니없이 서늘해졌다. 허지연의 수법은 이렇게나 조악했지만, 신유리는 알고 있었다. 심명준에게는 이런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허지연은 손수건을 침대 머리맡에 살포시 올려두고, 일부러 천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준 오빠가 언니 몸에 다른 남자 물건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알면... 오빠는 어떻게 생각할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명준이 문을 거칠게 밀치고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남색 손수건에 꽂혔다.
“이건 뭐야?”
얼음처럼 차가운 심명준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묻지 않았다.
허지연은 곧장 겁먹은 얼굴로 바뀌었다.
“오빠, 나... 난 유리 언니 밥 챙겨 주러 왔을 뿐인데, 우연히 이걸 봤어...”
심명준은 손수건을 낚아채 손에 쥐었고 힘이 들어간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유리야, 정말 너무 실망이야. 내가 네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줬는데, 그런데 이렇게 나오는 거야?”
심명준은 한 번도 신유리에게 설명할 틈을 주지 않았다.
“집사, 가문의 법도대로 벌을 내려.”
그러자 집사는 곧 검은 색 긴 채찍을 들고 왔다. 신유리는 경호원 둘에게 붙잡혀 마당으로 끌려가 긴 벤치 위에 눌렸다. 심명준은 처마 아래 서서 그림자 속에 얼굴을 감춘 채 말했다.
“백 대야. 똑똑히 기억해. 분수를 지키는 게 뭔지.”
첫 채찍이 떨어지자 살이 찢기는 통증에 신유리의 몸이 크게 떨렸다. 신유리는 아랫입술을 악물었다. 피비린내가 혀끝에 번졌다. 문득, 유리 온실에서 장미 가시에 손이 살짝 찔렸을 때, 심명준이 허둥지둥 가정의를 부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다정함이 지금 생각하면 비웃음만 나왔다.
두 번째, 세 번째...
채찍마다 휘파람 같은 바람 소리가 섞여 들어왔고, 신유리의 마지막 미련까지 산산이 부숴 버렸다. 오래된 상처가 다시 벌어지고, 피가 얇은 옷자락을 적셨다. 의식은 통증 속에서 흐려져 갔다. 신유리는 손바닥을 있는 힘껏 파고들었다. 더 날카로운 고통으로 자신을 억지로 붙잡아 두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처벌이 끝났을 때, 신유리는 찢긴 인형처럼 방으로 끌려 돌아왔다.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떨었다. 고열이 들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며 신유리를 갉아먹었다. 흐릿한 정신 속에서 신유리는 또다시 3년 전의 심명준을 봤다. 술자리를 막아 주던 남자,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손을 꼭 붙잡아 숨겨 주던 남자... 그런 장면들이 조각난 칼날이 되어, 이미 망가진 마음을 다시 찢어댔다.
며칠째인지도 모를 어느 날, 문이 열리며 서류 한 장이 발치에 던져졌다. 신유리는 기어서 다가가 창밖의 희미한 빛으로 글자를 읽었다.
이혼 증명서였다.
그 안에는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었고 거칠게 휘갈긴 글씨였다.
[방법을 써서 심씨 가문에서 빠져나와. 내가 데리러 갈게.]
신유리는 떨리는 손으로 차가운 이혼 증명서를 보았다. 그리고 낮게 웃었다.
웃다가, 끝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건 슬퍼서가 아니라 해방감 때문이었다.
신유리는 이제 마침내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신유리는 온 힘을 끌어모아 몸을 일으켰다. 벽을 짚고 한 걸음씩 문 쪽으로 옮겨가 문을 두드렸다. 경호원이 문을 열자, 밖에는 심명준이 서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했다.
신유리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심명준을 올려다봤다.
“심명준, 사람 붙여서 병원에 데려가 줘.”
그리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 당장 아이를 지우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