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나는 연승훈이 다른 번호로 걸려 온 줄 알고 보지도 않고 전화를 받자마자 막말을 퍼부었다. “연승훈, 넌 진짜 역겨운 쓰레기야! 다시 전화하면 스토킹으로 신고할 거야!”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금 뒤 고우빈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지안, 또 그 사람이랑 싸웠어? 무슨 일 있어?” ... 고우빈이 도착했을 때, 거실엔 이미 다섯 다발의 다양한 꽃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 분홍빛 계열의 꽃들이었는데 각각 화려하고 신선했으며 포장도 고급스러워 보여 분위기가 묘했다. 나는 꽃다발에서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런 꽃 좋아하나? 네 천년의 사랑이 보내는 거니까 감사히 여겨.] 정말 미친 사람 같았다. 나는 카드를 분노에 차서 찢었다. 그러자 고우빈은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이켰다. 그리고 올라온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 “이 꽃들 모두 치워서 버리세요.” 나는 경호원들이 꽃다발을 한 다발씩 옮기는 걸 보며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비싼 꽃들인데 설령 미친 사람이 보낸 거라도 집에 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이 너무 티가 났을까, 고우빈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까워?”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냥 아까워서. 별다른 뜻은 없어.” 고우빈은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그의 옆에 서서 변명하듯 계속 말했다. “저 꽃은 연승훈이 보낸 게 아니야.” 고우빈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나는 쑥스러워서 대답했다. “전화해서 물어보다가 싸웠어.” 고우빈은 복잡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내 얼굴을 만지며 어색하게 말했다. “나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그냥...” 고우빈은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는 그 사람한테 쉽게 전화하지 마. 내가 변호사 찾아줄게.”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진짜 연승훈 씨랑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말이야.” 나는 잠시 멈칫했다. “당연히 마음 정한 거야. 갑자기 왜 그렇게 물어?” 고우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