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장

잠시 고민하던 백이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가은이가 절 만나는 걸 너무 꺼려서 말이죠. 임신 준비는 어떻게 하죠?” 백이현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피로가 서려 있었다. 매번 냉랭한 시선으로 자신을 피하던 심가은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그녀는 단단한 벽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반복되는 거절 끝에 백이현은 점점 ‘노력’ 이라는 말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백 대표님은 너무 점잖으세요.” 송민재의 입꼬리가 비뚤게 올라갔다. “세상일이 늘 정공법으로만 되는 건 아니잖아요? 가끔은 지름길도 필요하죠.” 그는 의자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며 손가락을 탁탁 튕겼다. “물론, 누나가 화를 내긴 하겠죠. 하지만 애가 생기면 결국 대표님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름길...” 백이현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 한 단어가 방 안 공기마저 눅눅하게 가라앉혔다. 송민재는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밝히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형 중에 좀 특이한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의 목소리가 은근하게 낮아졌다. “백 대표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바로 구해드릴 수도 있어요.” 그는 위험한 거래를 제안하면서도 아무 일 아닌 듯 미소를 지었다. 백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송민재는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는 백이현의 저택을 나서는 동시에 그 형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수 형. 예전에 형이 여자들 집에 데리고 갈 때 썼던 약 아직 있어요?” “있지. 근데 가격이 좀 세. 왜? 필요해? 그럼 현금으로 줘, 외상은 안 돼. 가능해?” 송민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껌값이죠. 돈 드릴 테니까 약 좀 바로 넘겨줘요!” “좋아.” 송민재 모자가 떠난 후, 심가은은 업무상의 골치 아픈 일들이 많이 준 것을 느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하게 된 심가은은 시장에 들러 장을 보았다. 오랜만에 근사한 저녁을 해 먹을 생각이었다. 장바구니 손잡이가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