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고집

심재이의 눈에는 단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별 하나 없는 칠흑 같은 하늘처럼, 텅 비고 고요했다. 그 표정을 보자 고은찬의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식었다. 왠지 모를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배의 통증을 참아가며 손을 뻗었지만 심재이는 한발 물러서며 매정하게 그 손을 피했다. “고은찬, 난 더는 너한테 갈 생각 없어. 몇 년 동안 네 옆에 매달려 사는 게 지겨워. 이번만큼은 나를 위해 살 거야. 우린 이제 아무 관계도 아니니까, 앞으로 제발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 그 한마디를 끝으로 심재이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고은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가슴속에는 슬픔과 분노, 씁쓸함과 후회가 뒤섞여 숨이 막히듯 먹먹하게 죄어왔다. 그 역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눈을 감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언제나 심재이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그녀가 곁에 있는 게 너무 당연했다. 회사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게 일상이었고 그 존재가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도 몰랐다. 예전에는 심재이의 잔소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전, 술에 취해 위통을 참지 못하던 그 순간 가장 그리웠던 건 바로 그 목소리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심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사과하고 어떻게든 붙잡으려 했는데 심재이의 대답은 차갑고 단호했다. 마치 예리한 칼끝이 심장 깊숙이 꽂히는 듯했다. ‘정말 이렇게 끝내는 건가? 아니 절대 안 돼!’ 두 사람은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고은찬은 그 모든 걸 이렇게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설령 그녀가 마음을 접는다 해도 심씨와 고씨 두 집안이 그 혼인 인연을 그렇게 허무하게 끊어버릴 리 없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심재이는 결국 내 아내가 될 거야.’ 바닥에 흩어진 장미꽃을 한 번 바라본 고은찬은 붉은 꽃잎을 스쳐 지나가듯 눈에 담고는 조용히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 연습실 문 앞에 다다르자 안에서 강희연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심재이가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