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피아노 연주
20분 후.
고태겸의 차량이 강주영의 집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
온통 별장들로만 이루어진 단지였다.
심재이는 차에서 내린 후 긴장되는 마음에 가방을 꽉 움켜주었다.
트렁크에서 선물을 챙긴 고태겸은 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보더니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두려워?”
심재이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가요.”
마당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들려왔다. 꼭 부드러운 바람처럼 몸을 감싸고 다시 하늘 위로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멜로디가 바뀌었다. 지금은 꼭 어두운 숲속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고독하고 우수에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피아노 연주자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잠시 후, 분위기는 또 한 번 변했고 이번에는 해탈의 지경에 다다른 스님처럼 모든 것을 감싸 안 듯 조용하고도 따뜻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심재이는 그 모든 멜로디의 감정을 느끼며 연주가 멈출 때쯤 정원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피아노에서 손을 뗀 여성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해요. 제가 초심을 잃었어요. 교수님이 너를 얼마나 예뻐했는지 다 알면서 약속을 깨고 실망을 안겨드렸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심재이의 부모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피아노 지원을 끊었다. 돈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더 이상 그녀에게 불필요한 돈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런 부모님을 설득해준 사람이 바로 강주영이었다. 강주영은 레슨비를 받지 않을 테니 심재이가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게만 해달라고 했다.
당시의 강주영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유명한 피아니스트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제자가 되고 싶어 안달을 냈었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심재이 한 명이었다.
그 사실에 감격한 심재이는 지금처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열심히 피아노를 배워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보잘 것 없는 것 때문에 그녀는 그 약속을 바로 어기고 말았다.

Locked chapters
Download the Webfic App to unlock even more exciting content
Turn on the phone camera to scan directly, or copy the link and open it in your mobile browser
Click to copy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