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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나는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배고파. 일단 밥부터 먹자.” 그러곤 서둘러 학교 정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다예가 뒤에서 급하게 쫓아오며 투덜댔다. “온유나, 언제까지 말 안 하나 두고 보자. 내가 하루 종일 못살게 굴 거야.” 학교 문 앞에서 아침을 먹을 때도 성다예는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너 혹시 서후 비밀이라도 알아냈어? 예를 들면... 걔 호텔 갔다던가? 아니면 걔가 너랑 자겠다고 하니까 화나서 헤어지자고 한 거야?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달달한 두유를 마시며 한참 고민하다가 겨우 변명거리를 찾아내고는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서후가 옷 사줬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화낸 거야.” 성다예가 멍하니 눈을 깜빡이더니 한참 만에 찐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게 다야? 고작 그것 때문에 싸운 거라고?” 내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성다예가 입을 삐죽거렸다. “됐다, 됐어. 나 같은 모태 솔로가 커플 사이의 일을 어찌 알겠어. 그나저나 음악 대회가 며칠 뒤 아니야? 얼른 가서 서후를 달래. 대회를 놓치면 안 되지. 그렇게 재능이 있는데.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거야.” ‘나더러 진서후를 달래라고? 개나 가서 달래라고 해.’ 하지만 모르는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알게 된 이상 적어도 관심은 보여야 했다. 기숙사로 돌아와 진서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태원이 그러던데 어젯밤에 네가 작사 작곡한 거 다 태웠다며? 무슨 일 있었어?] 대략 10분 뒤 답장이 왔다. [신경 쓸 거 없어.] ‘그래. 그럼 신경 안 쓸게.’ 지난 생에 진서후에게 대회에 나가라고 애걸복걸 빈 건 나였지만 결국 그는 우승 트로피를 들고 신서영에게 용서를 빌었다. 대회 당일 현장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아침 일찍 도착해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고 스태프가 우리를 백스테이지로 안내하고는 준비하라고 했다. 남녀 참가자들이 뒤섞여 있었고 대부분 꿈에 부푼 대학생들이었다. 대회는 예선, 본선, 준결승, 결승으로 진행된다. 예선 날엔 관객이 많지 않았다. 모두들 준결승과 결승을 더 기대했다. 우리 부모님과 진서후의 부모님도 일 때문에 도저히 휴가를 내지 못해 못 왔지만 결승전 날엔 꼭 오겠다고 했다. 공정성을 위해 스태프가 참가자들의 핸드폰을 모두 수거했다. 나는 미리 부모님에게 전화해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난 생에 나는 예선에서 탈락했기에 이번엔 무척 긴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선을 통과했다. 아마 제대로 준비한 덕일 것이다. 지난 생에는 대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서후를 따라다니는 게 중요했던 터라 곡 준비도 대충했었다. 참가자들이 하나둘 탈락했고 나는 어느새 결승 무대에 올랐다. 무대 위에서 지난 생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그 러브송을 불렀다. 한 음절 한 음절 부를 때마다 지난 생의 참담했던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슴이 돌덩이에 짓눌린 것처럼 무거웠다. 노래를 마치자 관객석에서 함성과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부모님과 윤성희, 진태현이 보였다. 그들은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결승까지 온 이상 순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상금 몇백만 원을 받을 테니까. 상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찰나 사회자가 내 노래가 우승했다고 발표했다.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회자가 나에게 트로피를 건넸고 음악 회사와 계약할 수 있으니 고려해보라고 했다. 무거운 트로피를 안은 나는 속으로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가 음악에 재능이 없다는 걸 잘 알기에 현장에서 제안을 거절하고 2등과 3등에게 기회를 넘겼다. 사회자는 내가 거절할 줄 몰랐는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설득했지만 내가 계속 단호하게 거절하자 결국 포기했다. 대회가 끝난 뒤 나는 기뻐하며 부모님에게 달려갔다. 부모님은 나를 보고는 와락 끌어안았다. 엄마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유나 너 진짜 대단해. 노래 정말 잘 불렀어. 너무 듣기 좋더라.” 윤성희도 입이 귀에 걸렸다. “언니 예전에 유나는 재능이 없다며 음악 안 시키겠다고 했잖아요. 내가 설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엄청 후회할 뻔했어요.” 그 말에 엄마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성희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유나 너 이렇게 노래 잘하는 줄 몰랐어.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나는 민망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에요. 이번엔 그냥 운이 좋았어요.” “겸손하긴. 관객들이 뉘 집 딸이 이렇게 노래를 잘하냐고 엄청 많이 물었어. 나 진짜 당장 무대 위로 올라가서 내 예비 며느리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얼굴이 두껍지 못해서 참았어.” 양쪽 집안 사람들 모두 깔깔대며 웃었다. 바로 그때 엄마가 문득 뭔가 알아챈 듯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나저나 오늘 결승에서 서후가 왜 안 보여? 결승 못 올라갔어?” 사람들은 진서후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샀기에 당연히 결승에 오를 거라 믿었다. 그 말에 윤성희와 진태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윤성희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유나야, 서후 어디 갔어?”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후 대회에 참가 안 했어요.” “참가 안 했다고?” 모두 충격에 빠져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화 기록을 보여줬다. 그 순간 윤성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 녀석이...” 진태현이 핸드폰을 꺼냈다. “전화해봐야겠어.” 그때 대머리에 안경 낀 중년 남성이 허둥지둥 달려오더니 자신을 대회 담당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조금 전 내가 부른 노래의 저작권을 거액에 사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 말에 나는 너무 놀라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지난 생에 진서후에게 일어났던 일이 지금 내게 일어날 줄이야. 돈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꿈만 꾸는 것 같았고 온몸이 다 부들부들 떨렸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엄마에게 꼬집어달라고 했다. 엄마도 놀라긴 마찬가지였고 내 팔을 꼬집자 너무 아파 소리를 질렀다. 정말 꿈이 아니었다. 담당자가 말했다. “지금 시간 괜찮으시면 안에서 얘기 좀 나눌까요?” 윤성희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팔을 잡았다. “가자, 가자.” 통화를 마친 진태현이 근심 어린 얼굴로 다가왔다. “서후 전화 안 받아.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방금까지 기뻐하던 윤성희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서후 이 녀석 대체 뭐 하는 거야?” 엄마가 얼른 말했다. “유나 일은 우리가 처리할 테니까 두 사람은 얼른 서후한테 가봐. 정말 무슨 일 생기면 그땐 후회해도 늦었어.” 윤성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우리 먼저 갈게요.”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걱정하지 말아요, 언니. 유나를 위해 꼭 좋은 가격으로 협상해야 해요. 알았죠?” 그 말을 끝으로 윤성희와 진태현은 급히 떠났고 나와 부모님은 담당자를 따라 협상하러 들어갔다. 담당자는 내가 어리다고 만만하게 봤는지 처음에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잡다한 조건을 늘어놓았다. 부모님은 6백만 원도 괜찮다면서 서로 눈짓하며 동의하려 했다. 나는 급히 그들을 말리고 4천만 원을 불렀다. 그 소리에 부모님은 크게 놀라 숨을 들이쉬더니 내가 미쳤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담당자가 계속 깎으려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결국 4천만 원으로 결정했다. 밖으로 나오자 엄마가 붉어진 눈시울로 나를 흐뭇하게 쳐다봤다. “우리 유나 출세했네.” 아빠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게. 유나 진짜 다 컸어.” 나는 지난 생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부모님의 품에 와락 안겼다. “엄마, 아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는 윤성희에게 전화해 진서후의 소식을 물었다. 내가 바로 옆에 앉은 터라 윤성희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어휴, 서후 녀석 때문에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아요. 며칠째 밖에서 놀러만 다닌 거 있죠? 왜 참가 안 했냐고 물으니까 그냥 가기 싫어서 안 갔대요. 쟤 아빠가 지금 혼쭐을 내겠다고 허리띠를 찾고 있어요.” 엄마도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후한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나 봐.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애를 너무 때리거나 혼내지 말고 잘 타일러.” “알았어요. 서후 아빠랑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래. 저녁에 우리 집 와서 밥 먹어. 유나 수상 축하해야지.” 윤성희가 밝게 대답했다. “당연히 축하해야죠. 유나한테 맛있는 거 많이 해줘요, 언니.” 엄마는 전화를 끊고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유나야, 오늘 저녁에 뭐 먹고 싶어?” “갈비찜, 생선구이, 새우볶음...” 말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돌아 몇 번이나 침을 삼켰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모님과 함께 요리를 시작했다. 세 식구가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참으로 화기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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