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허가윤은 이득을 보면서도 억울한 척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만 송서아는 잘 안다. 그녀가 자신에게서 아무런 이득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서운하다니? 대체 뭐가? 어차피 떠날 곳이었어.’
송서아는 몇 분 만에 짐을 다 쌌다.
물욕이 많지 않다 보니 사들인 물건도 별로 없었고 대부분 박유준과 관련된 물건들인지라 챙겨 넣고 싶지도 않았다.
박유준은 그녀의 짐을 내려다보았는데 18인치 캐리어가 다 차지 않으니 내심 걱정스러웠다.
“친정 가서 한동안 지내야 할 텐데 짐이 겨우 이거예요?”
한편 허가윤의 생각은 달랐다. 송서아가 애초에 박씨 저택을 떠날 생각이 없으니 그저 친정에 가서 며칠 머물다가 돌아오는 거로 여겼다.
그녀는 연약한 척하며 박유준의 어깨에 기댔다.
“서준 씨, 배가 너무 아프네요.”
박유준은 재빨리 송서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허가윤을 안았다.
“많이 아파요? 지금 바로 의사 부를게요!”
그는 바쁘게 움직이며 가정의에게 연락했다.
박유준이 자리를 떠나니 허가윤은 마침내 대놓고 승리자의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송서아의 캐리어를 바라보며 경멸의 미소를 날렸다.
“짐이 고작 이거예요? 친정 가서 며칠 있다가 바로 돌아올 속셈이죠? 꿈 깨요 동서!”
송서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캐리어를 챙겨서 밖으로 나섰다. 이제 저 여자랑 말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허가윤에게 되레 죄책감의 표현으로 보였다.
허가윤은 흥분하며 앞으로 나아가 송서아의 손을 잡아당겼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거야?”
그녀는 제 남편을 넘보는 자를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한편 송서아는 잡힌 손목이 너무 아파 고개를 돌리고 허가윤의 시선을 마주했는데 그녀의 눈가에 분노가 가득 찼다.
“친정 가는 거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지? 그렇게 하면 네가 엄청 똑똑한 것 같아? 너 같은 년은 혼쭐이 나 봐야 정신을 차리지!”
박유준이 어느덧 의사와 함께 오고 있었다.
나선형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송서아가 미처 말할 틈도 없이 허가윤이 비명을 지르며 문 쪽으로 몸을 던졌다.
“으악!”
나선형 계단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더욱 다급해졌다. 박유준은 아직 다가오기도 전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왜 그래요 가윤 씨?”
그 순간, 문가에 무릎을 꿇고 앉은 허가윤이 배를 꽉 움켜쥐고 울상이 되어 송서아를 바라보았다.
“동서... 난 항상 동서를 동생처럼 생각했는데 어떻게 날 밀칠 수 있어요?”
송서아는 기가 막혀서 바닥에 주저앉은 허가윤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런 연기력이라면 박씨 저택에 남아서 애를 낳는 게 아니라 각 잡고 드라마를 찍어야 할 판이었다.
여우주연상은 영락없이 허가윤의 몫일 테니까.
박유준은 당황하며 허가윤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제수씨가 밀쳤다고요?”
허가윤은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닦으며 슬프게 말했다.
“계속 이 집에만 있다 보면 서방님 때문에 상사병으로 너무 힘들어할까 봐 걱정돼서 제가 일부러 친정에 가서 쉬고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동서는 정작 제가 내쫓는 줄로 알더군요. 어떻게 제가 그럴 수 있겠어요? 서방님이 사고를 당했지만 저는 항상 동서를 동생처럼 생각해왔다고요...”
허가윤은 감정을 호소하며 마치 세상의 모든 억울함을 혼자 삼키는 듯한 온화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송서아는 그런 허가윤의 모습에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이딴 말들을 내뱉을 수 있을까?
박유준은 다시 시선을 올리고 송서아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가에 원한과 증오가 맺혀 있었다.
“지금 제정신이에요? 가윤 씨 배 속의 아이가 얼마나 힘들게 찾아온 아이인지 몰라서 이래요? 어떻게 감히 임산부를 밀치냐고요?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제수씨가 책임질 수 있겠어요?”
점점 커지는 소란에 민채원이 달려왔다. 그녀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격분하며 송서아를 밀쳤다.
송서아는 문을 붙잡고 있었지만 민채원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연신 뒤로 밀려났다.
그러더니 균형을 잃고 캐리어 옆으로 쓰러졌다.
무릎이 바닥에 쓸려 상처가 났고 피가 스며 나왔다.
그녀는 괴로운 듯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곧이어 민채원이 분노 조로 쏘아붙였다.
“임신도 못 하는 주제에 감히 가윤이까지 해치려 들어? 기사 불러서 얘 당장 친정으로 돌려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