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송서아가 송씨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허가윤에게서 야릇한 사진이 한 장 도착했다.
최애라가 캐리어를 받아들고는 미간을 찌푸린 송서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서아야, 왜 그래? 아직도 유준이 생각 많이 나? 김씨 일가에서 재촉하고 있지만 엄마는 절대 너를 강요하지 않을 거야. 마음 추스르거든 그때 다시 얘기하자.”
송서아는 휴대폰의 사진을 힐긋 보다가 태연하게 대화창을 삭제하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최애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엄마, 이제 괜찮아요. 죽은 사람은 죽고 산 사람은 살아야죠. 김씨 일가랑 빨리 일정 잡는 게 좋겠어요!”
전에 통화에서 이미 들은 말이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최애라는 몹시 놀랐다.
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절대 억지로 강행하는 게 아니란 걸 확신했다.
최애라는 흐뭇한 얼굴로 송서아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래, 맞아. 죽은 사람은 죽었으니 산 사람은 살아가야지. 우린 더 씩씩하게 살아야 해! 김씨 일가랑 혼담은 너희 아빠 일만 해결되면 바로 정하자.”
송서아는 눈웃음을 지었다. 친정에 돌아오니 비로소 진정한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밤낮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는데 이제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송서아가 잠에서 깨자마자 반가운 소식이 도착했다.
“서아야, 네 아버지 소송을 곽 변호사님이 맡아주셨대! 이제 승소나 다름없어!”
최애라가 흥분하며 문을 두드렸다.
송서아는 졸린 눈을 비비며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최애라가 방에 들어와 그녀의 팔을 흔들고 나서야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송서아는 어렴풋이 눈을 뜨고 엄마에게 물었다.
“곽 변호사님이요? 경원시의 그 유명한 곽지민 변호사님 말씀이세요?”
송정호가 연루된 의료 비리 사건 때문에 송서아는 이 분야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었다. 기억하기로 곽지민 같은 인물은 박씨 일가에서도 돈만으로는 모셔올 수 없고 어느 정도 인맥이 필요하다고 했다.
송서아는 반쯤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박씨 일가에서 곽 변호사님을 모셔왔다고요?”
백주현 사건 때문에 박씨 일가에서 송정호를 돕겠다고 약속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박씨 일가에 최소한의 인간성을 기대했던 순간, 최애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원우가 도와줬어.”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송서아는 조금 낯설었다.
한참 기억을 더듬고 나서야 겨우 떠올렸다.
“김씨 일가의 김원우 씨 말이에요?”
최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흥분된 눈빛에서 김원우에 대한 감탄이 묻어났다.
다만 그것은 김씨 일가의 권세에 대한 동경은 아니었다. 실은 송정호 문제로 송씨 일가는 오랜 시간 시달렸다. 송정호가 비리 사건에 휘말린 후 최애라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오랫동안 마음을 짓누르던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최애라가 곧 로펌에 가야 한다고 말하자 송서아도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엄마, 저도 같이 갈래요!”
최애라가 송서아를 말렸다.
“오늘 원우 생일이야. 원래 김씨 일가에 다녀오려 했는데 로펌에도 가야 하네... 이렇게 할까? 엄마가 선물 미리 준비했으니 네가 대신 김씨 일가로 다녀올래?”
송서아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김씨 일가로 가기 전, 일부러 백화점에 들러 선물을 골랐다.
엄마가 준비한 선물은 엄마의 몫이다. 집까지 직접 방문하고 또 김원우가 이렇게 큰일을 해결해줬으니 송서아도 성의를 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남성 향수를 골랐는데 묵직한 계피 향과 은은한 자몽 향이 어우러진 독특한 우디 계열의 향이었다.
‘이런 향 좋아하겠지?’
김씨 저택.
송서아는 오늘 처음 김원우를 만나다 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생일이라 김씨 일가의 어른들과 경원의 유명 인사들도 많이 와 있었다.
사람들로 붐비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한창인 가운데 송서아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인파에 휩쓸려서 선뜻 김씨 일가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릴 적 김씨 일가 사람들을 본 적은 있지만 20년이나 지난 일이니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송서아는 결국 초조하게 선물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다들 삼삼오오 모여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목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송서아는 사람들 틈에 밀려 구석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젊은 여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송서아가 말을 걸려던 찰나, 두 여자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들었어? 김원우가 이혼녀랑 결혼한대. 게다가 애도 못 낳는다고 하던데!”
곧이어 다른 여자가 경멸의 미소를 지었다.
“이혼녀에 애도 못 낳는다고? 내가 그런 여자를 신경 쓸 가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