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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박유준은 오늘 송서아의 달라진 태도가 신경 쓰였다. 늘 무기력하고 공허해 보이던 그녀가 오늘은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허가윤의 뱃속 아이가 더 중요했다. 이 아이만 무사히 태어난다면 그는 다시 송서아에게 돌아가 비정상적인 모든 상황을 끝낼 수가 있다. “제가 많이 무례했죠? 미안해요. 다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에요. 제발 부탁이니 백 선생님 좀 모셔와 주세요. 제수씨네 집안에서 충분히 해낼 수 있잖아요.” 송서아는 줄곧 씁쓸한 미소만 지었다. 박유준과의 결혼생활 3년 동안 아이가 안 생겨서 끊임없어 병원을 드나들었고 그때도 백주현을 찾아갈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신세를 갚기가 가장 힘든 법, 송씨 일가가 몰락한 후 이미 너무 많은 인정을 빚진 상태였다. 송서아는 항상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왔다. 본인도 비록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부모님께 백주현을 찾아달라는 부탁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걸 박유준도 너무 잘 안다. 이 남자가 자신을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해 주는 줄 알았는데 이제야 깨달았다. 배려하고 아끼긴 개뿔, 모든 건 송서아의 착각일 뿐이다. 그는 오직 허가윤의 아이를 지키려고 이토록 송서아를 궁지로 몰아붙였다. 그녀가 오랫동안 침묵하자 박유준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수씨, 우리 가윤이 배 속 아이만 무사하다면 제수씨 아버님 일도 우리 집안에서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해 줄게요.” 쓴웃음을 짓고 있던 송서아는 이 말을 듣자 표정까지 굳어버렸다. 아빠 송정호의 일로 박유준에게 수없이 부탁해왔는데 그때마다 박씨 일가는 대충 얼버무릴 뿐이었다. 이제 와서 허가윤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그녀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송서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간신히 대답했다. “알겠어요.” 엄마 최애라에게 전화를 걸자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그 모습에 송서아는 미안함만 더 커졌다. 본인들도 어려운 처지인데 엄마는 지금 딸아이가 시댁에서 입지가 곤란해질까 봐 어려운 부탁임에도 기꺼이 나서주었다. 심지어 태연한 척 그녀를 위로했다. “서아야,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언제든 말하렴. 엄마, 아빠는 괜찮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송서아는 눈시울을 붉혔다. 혹시라도 이상한 낌새를 들킬까 봐 애써 감정을 억눌렀지만 전화를 끊기 직전, 최애라가 끝내 눈치채고 말았다. “서아야, 무슨 일 있니? 괜찮아?” 걱정과 염려가 담긴 목소리에 송서아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괜찮아요, 엄마. 그냥... 생리 때문에 배가 좀 아파서요.”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한편 엄마를 속인 것도 아니었다. 생리통이 시작돼서 아랫배를 쥐어뜯는 듯한 고통에 몸을 웅크려야 했다.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오늘 입은 옅은 파란색 청바지에 끔찍하게도 핏자국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그녀는 뻘쭘함에 얼굴을 붉히며 벽을 짚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박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기 혹시... 생리대랑 바지 좀 갖다 줄 수 있어요? 응급실 옆 여자 화장실이에요.” 전화기 너머로 박유준은 그녀의 말을 듣는 척도 않고 다급하게 물었다. “가윤이가 지금 너무 힘들어해요. 백 선생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부탁 들어주셨나요?” 송서아는 극심한 고통에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화장실 벽을 짚은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네... 승낙하셨으니 이제 제 부탁 좀 들어주실래요?” 그녀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허약할 따름이었다. 별안간 전화기 너머로 허가윤의 오버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여보, 나 너무 아파요! 우리 아기 잘못되는 거 아니에요? 그럼 나도 죽을래! 살고 싶지 않아.” 박유준은 다급하게 전화를 끊으며 이 한마디만 내던졌다. “지금 가윤이 정신 상태가 너무 불안정해요. 제발 이런 사소한 일로 날 괴롭히지 말아요. 그냥 알아서 하라고요!” 끊긴 통화, 송서아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가윤의 ‘죽고 싶다’라는 말 한마디에 그녀의 모든 일이 ‘사소한 일’로 되어버린 걸까? 진정 죽고 싶은 사람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 않는다. 마치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었던 송서아처럼 지난 한 달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고 죽고 싶다는 표현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송서아는 문득 박유준과 처음 만났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녀는 민감한 체질이라 대부분 브랜드 생리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하여 생리 때마다 박유준은 그녀를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아 소규모 브랜드 제품을 찾아다녔다. 그녀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화장실 변기에 겨우 앉았다. 하지만 눈빛만은 여느 때보다 단호했다. 송서아는 휴대폰을 꺼내 최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제 결혼 말이에요... 가능한 한 날짜 빨리 잡아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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