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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 선우연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다. 그녀를 거둬들인 사람은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우남시에서 ‘황태자’로 불리는 남자. “열 살 차이니까 아저씨라고 불러.” 이후, 그녀가 원하면 별이든 달이든 따다 줄 기세로 우남시의 공주님으로 애지중지 키웠다. 18번째 생일, 그의 염주를 훔쳐 은밀한 곳에 하나씩 밀어 넣었다. 차가운 촉감은 마치 손가락으로 애무하는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열린 문 너머에서 남자는 상상조차 못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노발대발했다. 감히 삼촌도 넘보는 패륜아라며 호되게 나무랐다. 다음 날, 그녀의 S대 합격 통지서를 찢어버리고 리베 아카데미로 보냈다. 그곳은 성북시에서 가장 엄격한 학교로 심신을 수양하기 적합했다. 이참에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을 똑바로 배워 음란한 생각은 말끔히 지운 뒤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도착한 첫날부터 누군가 눈에 겨자를 들이부었고, 둘째 날에는 계단에서 두 시간 동안 질질 끌려다녔으며, 셋째 날엔 낯선 남자가 그녀의 방에 들어왔다. ... 3년 후, 배진우가 그녀를 데리러 왔다. 리베 아카데미의 정문 앞에 서 있는 선우연의 앞에 눈에 익은 검은색 마이바흐가 천천히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 배진우가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차가우면서도 고귀한 모습은 여전했다. 하지만 3년 전과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조수석에 보이는 낯선 여자 한 명. 그녀는 우아한 흰색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네가 우연이구나? 안녕, 나는 진우 씨 약혼녀 김미정이야.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선우연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말을 마치자마자 묵묵히 뒷좌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은 배진우는 싸늘한 얼굴로 시동을 걸었다. “그동안 공부는 잘했어? 아직도 그런 생각 하고 있니?” 선우연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언가 마음을 꽉 움켜쥔 듯 숨이 막혀왔다. 머릿속으로는 전기 충격을 당하고, 질질 끌려다니고, 모욕을 당하던 나날이 떠올렸다. 이내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메어 왔다.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눈을 질끈 감았고,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요.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거예요.” 배진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분명 가장 듣고 싶었던 대답인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알면 됐어.” 씁쓸한 미소와 함께 선우연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차는 빠르게 달려 별장 입구에 멈춰 섰다. 선우연은 차에서 내려 자연스럽게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을 열자 그곳은 이미 고양이 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느새 뒤에 나타난 김미정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진우 씨랑 곧 결혼할 거라서 얼마 전부터 이 집에 들어와 같이 살고 있었어. 평소에 유기묘랑 유기견 구조하는 데 관심이 많아 햇볕이 제일 잘 드는 네 방에서 키웠어. 도우미한테 금방 치우라고 할게.” 선우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제 언니가 안주인이신걸요. 저는 어디서 자든 상관없어요.” 말을 끝내고 고분고분 객실로 향했다. 저녁때, 배진우는 김미정을 지극정성으로 챙겨주었다. 음식을 덜어주고 다정하게 말도 건네며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선우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밥만 먹었다. 마치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는 듯. 이때, 김미정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연아, 밥만 먹지 말고 반찬도 좀 먹어.” 선우연은 본능적으로 명령에 따르듯 정신없이 젓가락으로 반찬을 입에 쑤셔 넣었다. 목구멍이 델 만큼 뜨거워도 기계처럼 우걱우걱 먹기만 했다. 김미정이 웃으며 배진우를 바라보았다. “연이가 까다롭다고 하더니 내가 보기엔 전혀 안 그런데? 얼마나 착하고 순해.” 배진우는 고개를 들어 선우연을 쳐다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180도 달라진 모습에 은근히 놀랐다. 집에 도착한 이후로 성질을 부린 적도 없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카데미에서 제대로 배웠네. 앞으로도 오늘처럼 미정이랑 잘 지내.” 선우연은 앞에 놓인 반찬을 다 먹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어요. 먼저 가서 쉴게요.” 그리고 방에 돌아와 문을 닫은 후에야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이내 주머니에서 조그만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리베 아카데미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차곡차곡 모은 돈이 들어 있었다. 조금 전 김미정과 잘 지내라는 배진우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이곳을 떠나기로, 그리고 배진우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기로. 지폐를 세어보니 겨우 9일 뒤 저가 항공권 한 장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곧이어 휴대폰을 꺼내 떨리는 손가락으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결제가 완료되는 순간 눈을 감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치 해방된 듯하면서도 절망적인 감정이 뒤섞였다. 샤워를 마친 후, 리베 아카데미에서 그랬던 것처럼 침대에 누워 억지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오늘은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온 탓인지 눈을 감자마자 배진우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목소리는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선우연, 이 패륜아야! 황당하기 짝이 없군. 감히 삼촌을 넘봐?” 과거의 기억들이 뒤엉켜 머리가 뒤죽박죽 했다. 그리고 비몽사몽 잠이 들려고 할 때 문이 벌컥 열렸다.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이마를 찌푸린 채 말했다. “왜 이렇게 일찍 자? 우유 안 마셔?”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선우연은 눈을 번쩍 뜨며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도 잊고 아직도 리베 아카데미에 있는 줄 알았다. 그곳에서 방문자가 생기면 그녀는 즉시 남자의 허리띠를 풀어야만 했다. 심지어 생리 중일 때도 예외는 없었다. 단 1초라도 꾸물대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고통이 뒤따랐다. 이내 황급히 뛰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띠를 풀면서 훌쩍거렸다. “제발 때리지만 마세요. 금방 해드릴게요.” 허리띠가 풀리기 직전 방 안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눈물에 젖어 흐릿한 시야 속 우유 잔을 들고 서 있는 배진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혼란이 서려 있었다. “선우연, 지금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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