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박은영의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임신과 출산을 못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최선을 다했다면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수밖에.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상황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주치의는 박은영의 심정이 무척이나 이해되었다. “그럼 언제부터 방사선 치료를 시작할 건가요? 3개월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박은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도록 할게요.” 그녀는 의사와 상의하여 보수적인 치료 방안을 세웠다. 먼저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고 수입 특효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면서 암세포 확산을 최대한 억제하기로 했다. 처방전을 받은 박은영은 바로 약을 타러 가지 않고 뒤쪽 요양원으로 향했다. 그녀가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해도 죽음 앞에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였다. 피난처를 찾고 싶다는 생각에 갑자기 삼촌 박태욱이 보고 싶어졌다. 박태욱의 병실이 12층에 있었는데 박은영이 도착했을 때 텅 비어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갔다고 했다. 그녀는 곧장 방사선 치료실로 향했다. 환자를 보러 왔다고 말하자마자 안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오더니 점점 통제력을 잃으면서 귀에 거슬릴 정도로 변해 갔다. 늘 강직하고 여유롭던 박태욱마저도 이 순간에는 매우 연약해 보였다.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은 박은영은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잠시 후 간호사가 박태욱을 휠체어에 태우고 병실로 데려갔다. 박태욱의 안색이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방사선 치료 때문에 신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병실로 들어가지 않고 복도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나도 삼촌처럼 저렇게 될까?’ 마비된 듯한 절망감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처방전을 들고 약을 타러 갔다가 1층 로비를 지나던 중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새언니, 어쩌다 감기에 걸렸어요? 걱정되게.” 박은영이 고개를 돌려보니 유나연이 벤치에 앉아 서연주의 이마를 걱정스럽게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