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2화
그는 심지은의 물음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사실 그대로 말했다.
“나와 가희 씨는... 거의 이십 년의 인연이야.”
짧은 한마디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십 년이라는 시간은, 그만큼 쉽게 끊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
심지은의 손끝이 천천히 움켜쥐어졌다.
그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숨이 잠시 멎은 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끝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괜한 질문으로 더 깊이 파고들지도 않았다.
“그렇죠. 괜찮아요, 저도 이해해요.”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의지하면서도, 선을 지키듯 조심스러운 거리감을 유지했다.
심준영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어떤 일들은, 모른 척해야만 했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 감정에 답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가희는 이미 운명처럼 각인된 존재였으니까.
...
심지은과 헤어진 뒤, 심준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차에 올랐다.
요즘 들어 심가희의 감정 기복이 유난히 심했다.
심준영은 그녀가 그릴수록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강한 모습을 연기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모든 반응은 자신에 대한 미련에서 비롯된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유 없는 오해와 분노에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녀가 불안하면 자신도 편할 리 없었다.
한숨을 내쉰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결심한 듯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은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먼저였다. 그래야 예정된 결혼식도 무사히 치를 수 있을 테니까.
연락처 맨 위에는 늘 그렇듯 심가희의 이름이 고정되어 있었다.
심준영이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벨 소리가 울렸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전화받자마자, 심태호의 날 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늘 집안 모임 있는 거 몰랐니? 혼인 신고 문제 상의하자고 했잖아. 근데 또 바쁘다고 빠져?”
심준영은 이마를 짚으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급한 일이 좀 있었어요.”
“급한 일? 네 혼인 신고보다 더 급한 게 세상에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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