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우리는 부부
차가운 목소리, 까만 눈동자에는 오직 냉담함만이 남아있었다. 마치 조금 전 그 뜨겁고 애정 어린 장면이 모두 그녀의 착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유수진은 주이찬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지만 문을 나서며 텅 빈 복도를 보자 강미나가 다시 생각나 얼굴이 새파래졌다.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문이 굳게 닫혔다.
“주이찬, 주이찬 문 열어... 경찰에 얘기해 줘, 강미나 풀어주라고...”
안절부절못하며 문을 두드렸지만 방 안의 사람은 듣지 못한 듯 아무 반응이 없었다.
유수진은 어쩔 수 없이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강미나는 이미 경찰차에 앉은 상태였다.
눈시울이 붉어진 강미나가 입을 열려는 순간 차 문이 닫혔다.
“미나야...”
유수진이 달려가자 경찰이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
“이분은 무단 침입했고 또 사람을 다치게 했습니다. 우선 저희와 함께 경찰 서로 가야 합니다.”
“그, 그럼 전과가 생기나요? 사실 그 방에 있든 손님은 우리가 아는 사람이에요. 친구인데 혹시...”
“안 됩니다. 피해자 측에서 신고했고 저희도 절차대로 할 뿐입니다. 만약 신고인 측에서 합의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삼일 정도 구치소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유수진은 벼락 맞은 기분이었다.
강미나에게 전과가 생긴다는 말인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강미나는 취직할 때마다 한계를 느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매일 여섯 시간만 자며 하루 종일 독서실에서 보내면서 결국에는 면접을 통과하고 필기시험에서도 1등을 했다. 이제 막 합격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유수진은 미안함과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를 위해 나서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괜찮으세요?”
경찰도 안타까운 눈빛으로 유수진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감쌌지만 상처를 건드리자 아파서 얼굴이 찡그려졌다.
경찰이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은 법치 사회입니다. 경찰을 믿으세요. 만약 누군가 괴롭힌다면 절대로 참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세요.”
유수진은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주이찬의 현재 위치를 생각하면 신고한다고 한들 구치소에 들어가는 사람이 누가 될지 말하기 어려웠다. 특히 그녀들이 먼저 무단 침입을 했기 때문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경찰이 본인까지 함께 데려가지 않은 것도 주이찬이 봐 준 셈이었다.
하지만 유수진은 강미나의 아름다운 미래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
“그럼 제 친구는...”
“이 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아주 커질 수도 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신고인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쪽에서 괜찮다고 하고 24시간 이내에 합의를 원하면 저분은 풀려나겠지만 24시간을 넘기면... 전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
말을 마친 뒤 경찰은 차를 타고 떠났다.
유수진은 어쩔 수 없이 주이찬을 찾아가 합의를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상대방이 모욕을 준다 해도 이번만큼은 감수하자고 결심했다.
24시간, 강미나는 절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러나 블루 그린 호텔 경비원은 유수진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손님으로 왔다고 해도 어림없었다.
유수진은 그제야 블루 그린 호텔 아래 작은 로고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신유.
이것은 신유 그룹 산하의 호텔이었다.
로고를 본 유수진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래도 가만있을 순 없어.’
강미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지켜 볼 수는 없었다.
별장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 되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 있는 유수진은 복잡한 마음을 씻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 목욕을 했다.
4년 전 그들은 추악하게 헤어졌으니 주이찬이 강미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목욕을 마친 뒤 머리를 말리려던 유수진은 어깨의 이빨 자국이 보고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만졌다. 그러나 살짝 스치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 참을 수 없었다.
피가 났지만 상처가 깊지 않아 금방 아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온화했던 주이찬이, 4년이 지났는데도 입을 사용할 정도로 참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도 그녀를 원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 유수진은 주이찬과 헤어지기 위해 학교에서 소란을 피우고 경찰까지 불렀다. 그를 가난하다고, 벼락출세를 갈망하는 남자라고 욕하며 전교생 수천 명 앞에서 그의 체면을 구겼다.
자존심이 강한 주이찬이 다시 유수진을 만났을 때 때리지 않고 참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유수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갑자기 침실 문이 열리더니 술 냄새와 여자 향수 냄새가 실내에 퍼져 나왔다.
비틀거리며 침대에 앉아, 넥타이를 풀어 머리맡에 던지는 한경민의 모습에 유수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방 잘못 들어왔어. 네 방은 맞은편이야.”
한경민이 고개를 들어 유수진을 바라보았다. 잘생긴 얼굴이 붉게 물들어 흐리멍덩한 상태였다.
“유수진, 넌 내가 아무 여자랑 자도 상관없다는 거지?”
“누구랑 자든 네 자유야.”
유수진의 축축하게 젖은 머리는 향기를 머금고 있었고 어깨에 어수선하게 내려온 그 모습은 요염한 기운을 내뿜었다.
“일어나, 네 방으로 돌아가.”
유수진이 남자를 문 쪽으로 끌고 가자 한경민이 오히려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가 부부라는 건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