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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때의 네 사람

당시 너무 안 좋게 헤어진 두 사람, 아무리 겸손한 사람이라도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유수진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럼 말해봐, 어떻게 해야 합의해 줄 건데? 강미나가 전과자로 남게 할 순 없어.” “내가 너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남자의 눈은 예전처럼 맑았지만 온화했던 눈빛은 진작 비아냥으로 변했다. “내가 너라면 당장 그 남자 옆으로 돌아가서 옷을 벗고 예전에 월세방에서 네가 내 위에 타고 앉았던 것처럼 온갖 방법으로 남자친구를 잘 달래서 이 일을 해결했을 거야. 이런 일이 생겼는데 당연히 현재 남자친구를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 예전에 모든 것을 버리고 바다를 건너 겨우 꼬신 남자인데 이 정도는 해야 그 남자 체면을 세워주는 거지.” 유수진의 얼굴은 순식간에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렸다. 주이찬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소중한 추억으로 그녀를 조롱할 줄은 몰랐다. 예전 그 다혈질의 유수진이었다면 진작 따귀 한 대 날렸을 테지만 4년의 세월과 변한 집안 상황은 그녀의 모진 성격을 둥글게 만들어 놓았다. 조용히 선 채 시선을 내리깐 유수진은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순간 심장이 찔린 듯 아픈 느낌에 주이찬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성큼성큼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유수진은 본능적으로 쫓아가려 했지만 경비원에게 막혔다. “죄송합니다.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이지 말라는 지시가 있어서요.” “지시? 누구 지시인데요?” 경호원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이찬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유수진은 어쩔 수 없이 옆에서 기다려야 했다. 한낮이 지났지만 여전히 강하게 비추는 태양에 유수진은 답답하고 숨이 차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오피스 건물뿐, 밀크티 가게 하나 보이지 않아 태양 아래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더워서 지칠 대로 지친 상황, 바로 그때 검은색 마이바흐가 갑자기 그녀 앞에 멈춰 섰다. 검은색 승용차를 보자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유수진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유수진?” 차 창문이 내려오더니 여자보다 더 예쁘장한 요물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도지후?” 유수진은 조금 의외긴 했지만 여기가 신유 그룹인 만큼 도지후가 오는 게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도지후는 주이찬의 절친이자 신유 그룹의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정말 너야?” 도지후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뭐해? 귀국한 지 1년 됐지? 그래도 우리 옛 친구들 아직 기억하네?” 목소리에는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도 담겨 있었지만 약간의 비웃음도 섞여 있었다. 유수진이 아무 대답 없이 웃으며 그냥 넘기려 하자 도지후가 계속 물었다. “설마 이찬이 찾으러 온 거야?” “응... 어제 좀 일이 생겨서 부탁할 게 있어서.” “너에게 무참히 버림받고 전교생의 조롱거리가 되긴 했지만 네가 말만 하면 거절하지 않을...” “오빠, 가야 해.” 누군가 매우 불편한 듯한 어조로 그들의 말을 끊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린 유수진은 도지후 차 안 조수석에서 또 다른 예쁜 얼굴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허민영. 도지후의 사촌 동생인 허민영은 현재 가장 핫한 여자 연예인으로 과거 그들 네 명 중 제일 어렸다. “뭘 봐? 예전에는 가난이 싫다며? 돈 많은 게 좋다며? 그래서 이찬이를 버렸으면서 이제 와서 이찬이가 출세한 걸 보고 접근하려는 거야? 이찬이는 너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허민영은 거리낌 없이 비꼬았다. “오빠, 길에서 만난 개나 고양이는 굳이 말 걸 필요 없어. 체면 떨어지니까.” 도지후는 입을 삐쭉 내밀더니 유수진에게 손을 흔든 뒤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차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유수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지후에게 부탁해서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 도지후는 회사로 돌아갔고 허민영은 방금 산 뜨거운 죽을 들고 사장실로 향했다. 주이찬은 방금 이사회와의 화상 회의를 마친 참이었다. “아침부터 출근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 내가 죽을 사 왔으니까 좀 먹어.” 허민영이 뜨거운 죽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응...” 일에 집중하고 있는 주이찬은 허민영의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자 허민영은 조금 상처받은 듯했다. 이 남자는 그녀가 중학교 때부터 마음에 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남자는 한 번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허민영이 말했다. “들어올 때 유수진을 만났는데 설마 너를 찾으러 온 거 아니지?” 남자는 타이핑하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번거로운 일에 대해 신경 쓰기 귀찮은 듯 전혀 개의치 않았다. 허민영이 계속 말했다. “어제 블루 그린 호텔에서 시비가 있었다며? 귀국한 지 1년 넘었는데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더니. 설마 네가 본인한테 미련이 남아있을까 봐 그런 건 아니겠지? 예전처럼 물고 늘어질까 봐...” 순간 고개를 든 주이찬은 날카롭고 차가운 눈동자로 허민영을 바라봤다. 단 한 번의 시선이었지만 허민영은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일단 뭐라도 좀 먹어. 아침 안 먹었다고 들었어. 너 원래 일에 몰두하면 밥 안 먹잖아.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셔.” 허민영은 급히 화제를 돌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머니께서 오늘 집에 밥 먹으러 오라고 하셨는데 가는 게 좋을지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어. 어른이 여러 번 불렀는데 자꾸 거절하는 게 안 좋을 것 같아서...” “마음대로 해.” “그럼 좀 있다가 네 차 타고 같이 가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정을 봐서라도 거절하지는 않을 거지?” 허민영은 농담처럼 말했다. “응.” 주이찬은 심플하게 대답했지만 허민영은 그 한 글자의 대답에도 무척 기뻤다. 주이찬은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비록 예전에 그의 엄마의 부탁으로 주씨 가문에 자주 들러도 주이찬은 별말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허민영은 주이찬이 별로 내키지 않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주이찬이 드디어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차를 타는 것까지 허락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이찬을 따라다닌 지 어언간 십 년이 넘었다. 그사이 가장 사랑하던 디자인 전공까지 포기하고 연예계에 들어왔다. 이 정도의 정성이면 돌 위에도 꽃이 필 것이다. 허민영은 매우 흥분했다. 주씨 가문 어른들 앞에서 좋은 이미지를 선보이기 위해 급히 화장을 지우고 산뜻한 메이크업으로 다시 꾸몄다. 유수진? 그건 모두 과거의 일이었다. 이제 그녀야말로 이찬의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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