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경찰 신고를 마치고 짐을 싸러 별장으로 돌아오자마자 현관문이 쾅 하고 열렸다.
진도윤이 굳은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고 그 뒤로 진서진과 진유진이 따라왔다. 두 아이의 눈에는 강인아가 용서받을 수 없는 끔찍한 짓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심시은을 살인 혐의로 네가 신고했어?”
진도윤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은이가 대체 누굴 죽였다는 거야? 끝까지 이럴 생각이야?”
강인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진서진이 달려와 그녀를 힘껏 밀쳤다.
“나쁜 엄마! 시은 이모를 꼭 죽여야 속이 시원해요?”
진유진도 달려들어 작은 주먹으로 강인아의 다리를 때렸다.
“너무 나빠요! 왜 착한 시은 이모를 모함해요?”
강인아는 그들에게 밀려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가 옷장에 등을 부딪쳤고 고통에 숨을 크게 들이켰다.
붉어진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시은이 마네킹을 내 동생으로 바꿨어. 인우를 산 채로 튀겨 죽게 만든 거야. 그래서 신고했어.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
세 사람은 잠시 말을 잃은 듯 멍해졌다.
이내 진도윤이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헛소리야? 시은이가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잖아.”
강인아는 오히려 눈물이 쏟아질 만큼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지금 당장 내 동생한테 전화해 봐. 받는지, 안 받는지.”
진도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휴대전화를 꺼내 강인아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기나긴 연결음 끝에 전화는 자동으로 끊겼다.
진도윤의 얼굴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현관문이 살짝 열렸다. 심시은이 창백한 얼굴로 가냘프게 문틀에 기대며 들어왔다.
“인우가 졸업 여행을 갔다고 들었는데. 아마 신호가 좋지 않아서 전화를 못 받는 것 같아요.”
진서진과 진유진은 한달음에 달려가 심시은의 양쪽 팔에 매달렸다.
“시은 이모, 왜 벌써 퇴원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잖아요.”
심시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인아가 나를 살인 혐의로 신고했다고 들었어. 와서 해명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시선을 강인아에게 돌려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이해해. 예전에 도윤이와 서로 좋아했던 사이였던 건 맞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야. 너희 두 사람은 결혼까지 했고. 나는 그저 묵묵히 축하했을 뿐 네 가정을 파괴할 생각은 전혀 없어.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나를 모함할 필요는 없잖아. 살인죄라니, 그건 말도 안 돼.”
진서진은 즉시 작은 얼굴을 치켜들고 존경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시은 이모는 역시 달라요. 엄마랑은 진짜 수준 차이가 확 난다니까요!”
진유진도 입을 삐죽거리며 거들었다.
“형 말이 맞아. 엄마는 거짓말만 하고 남을 해치기만 해.”
강인아는 온몸을 떨며 손톱을 손바닥 깊숙이 박았다.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분명해질 거야.”
“조사?”
진도윤은 냉소를 흘렸다.
“진실은 네가 시은이를 모함한 거야. 뭘 더 조사해?”
그는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사건은 취하했고 손도 써놨어. 서울에서 네 사건을 맡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강인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막 입을 열려 했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경찰서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강인아 씨, 해당 사건은 저희가 취하했습니다. 진 대표님께서 말씀하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서울에서 이 사건을 맡을 곳은 없을 겁니다.”
전화가 끊기자, 강인아는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고통과 절망,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을 짓눌렀고 심장은 칼로 도려낸 듯 아파 눈앞이 흐려졌다.
그러다 끝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장 가까운 남편과 아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진도윤은 이유 없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려 말했다.
“됐어. 이 일은 여기서 끝내. 이번엔 내가 좀 심했어. 놀라게 해서 미안해. 사과할게.”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덧붙였다.
“원하는 보상이 뭐야? 뭐든 다 해줄게.”
강인아의 눈물은 여전히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눈빛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닦고 몸을 돌려 서랍장으로 향했다. 동작은 매우 느렸고 마치 한 걸음 한 걸음 과거의 자신과 작별하는 것 같았다.
이혼 합의서를 꺼내 들었을 때, 그녀의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노나 슬픔 때문이 아니라 거의 해방감에 가까운 평온함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