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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서명해.” 강인아는 서류를 마지막 페이지로 넘겨 앞부분을 가린 채 그에게 내밀었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진도윤은 힐끗 서류를 쳐다보더니 또 그녀가 원하는 보석이나 부동산이겠거니 생각했다. 이 소동을 빨리 끝내고 싶어 대충 훑어본 뒤 사인을 했다. 사인을 마친 그는 고개를 들었다. “시은이 몸이 안 좋아. 집에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여기서 며칠 묵을 거야.” 강인아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맘대로 해.” 그녀는 서류를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변호사 사무실. 변호사는 이혼 합의서를 꼼꼼히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은 유효합니다. 강인아 씨, 숙려 기간 한 달만 지나면 강인아 씨와 진도윤 씨의 혼인 관계는 해소됩니다.” 강인아는 서류를 꽉 쥐었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드디어 끝나는구나.’ 저녁이 되어 강인아가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심시은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진서진과 진유진은 양옆에 기대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왕자가 공주에게 입을 맞추었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심시은은 부드럽게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서진이 작은 얼굴을 쳐들고 말했다. “시은 이모는 엄마보다 훨씬 상냥한 사람이에요.” 진유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시은 이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 강인아는 문 앞에 선 채 심장이 칼에 찔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 무표정한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가 객실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줄기가 몸을 씻어냈지만 마음속의 냉기는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속으로 되뇌었다. ‘걱정하지 마. 그 소원, 곧 이루게 될 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의 다른 쪽이 갑자기 움푹 들어갔다. 진도윤은 샤워를 마치고 그녀의 옆에 누운 것이다. 강인아는 등을 돌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다가와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얇은 입술을 그녀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강인아는 놀라 그를 밀어냈다. 진도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보상도 줬고 네 동생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잖아.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생각이야?” 강인아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똑똑!” 진서진이 방문을 두드리더니 작은 머리를 빼꼼히 들이밀었다. “아빠, 일기 예보에서 오늘 밤에 천둥 친다고 했어요. 시은 이모는 천둥번개를 제일 무서워한다면서요.” 진유진도 비집고 들어왔다. “아빠, 시은 이모 무서워하니까 빨리 곁에 있어 줘요!” 진도윤은 창밖의 흐린 하늘을 바라보다가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켰다. 떠나기 전, 그는 짧게 말했다. “오늘 밤은 혼자 자.” 방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옆방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도윤아, 왔어?” 심시은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아빠, 시은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는 정말 재밌어요!” 진서진이 신이 나서 말했고 진유진도 애교를 부렸다. “아빠, 시은 이모를 계속 여기서 살게 해주면 안 돼요?” 진도윤은 낮게 웃었다. “그래.” 강인아는 침대에 누운 채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강인아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도 부엌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진도윤은 앞치마를 두르고 아일랜드 식탁 앞에 서 있었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뒤집개를 쥐고 있었다. 심시은은 그의 옆에 서서 때때로 코를 가까이 대고 향기를 맡으며 초승달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서진과 진유진은 그들 다리 주변에 모여 작은 얼굴을 쳐들고 재잘거렸다. “도윤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내가 좋아하는 맛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심시은은 감동한 듯 부드럽게 말했다. 진도윤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인아에게는 한 번도 준 적 없는 부드러움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지.” 그는 완성된 계란 프라이를 접시에 담아 심시은에게 내밀었다. “먹어 봐. 맛이 변했는지.” 심시은은 한 입 먹고 눈썹을 펴며 말했다. “예전보다 훨씬 맛있어.” 진서진은 즉시 손을 들었다. “시은 이모, 앞으로 아빠가 바쁠 때는 제가 요리해 줄게요.” 진유진도 깡충거리며 맞장구쳤다. “나도 배울 거야! 아빠보다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어!” 심시은은 웃음을 터뜨리며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진도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냉정한 눈매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강인아는 계단 입구에 서서 자조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진도윤의 생활 수준은 늘 높았다. 두 아이 역시 어릴 때부터 까다롭고 변덕스러워 그녀는 늘 이 집안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진도윤처럼 물 한 방울도 묻히지 않던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진서진과 진유진처럼 응석받이인 아이들도 이렇게 철이 들 수 있었다. 그들에게 그녀는 먼지처럼 보잘것없는 존재였지만 심시은에게는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먼저 사랑한 사람이 역시 철저하게 지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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