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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강은우는 강우빈과 똑 닮은 눈빛으로 심은지를 쏘아보았다. 엄마는 밤새도록 자신을 돌봐주지도 않았고 먹고 싶다던 옥수수수프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은 상처를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꾀병 부린다고 탓하고 있었다. 다리가 이렇게 아픈데 입원하면 안 되는 거였을까? 강은우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엄마는 신경 안 써도 돼요. 저는 입원할 거예요. 서연 이모랑 아빠가 돌봐줄 거예요!” 심은지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강은우는 그녀를 똑바로 노려봤다. 예전 같았으면 자기가 ‘서연 이모’라고 부르기만 해도 엄마는 표정이 변했을 텐데 지금은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 강은우는 이유 모를 억울함에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다쳤는데 왜 병원에 와서 돌봐주지 않아요? 엄마라는 사람이 왜 그래요?” ‘흥!’ 심은지는 냉소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말투가 강우빈과 똑 닮아 있었다.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끝없이 희생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심은지는 강은우를 지나쳐 가려 했다. “엄마, 가지 마요 엄마, 가지 마요...” 강은우는 울먹이며 붙잡았지만 심은지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들어 강우빈 일행을 보았다. 강우빈은 울고 있는 강은우를 안아 올리며 음울한 눈빛으로 심은지를 노려보았다. “심은지, 너 정말 잔인하구나!” “언니, 은우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대하세요?” 한서연은 안타까운 얼굴로 강우빈 옆에 서 있었다. 강우빈은 아들을 품에 안고 있었고 한서연은 그 곁에서 위로하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좌우로 나란히 서 있는 단란한 가족 같았다. 심은지는 한서연의 속셈을 단번에 알아차렸지만 더 이상 신경 쓸 힘도 기분도 없었다. “은우가 뭘 잘못했든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요. 게다가 엄마라면 아이를 품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한서연은 강우빈 품에 안긴 강은우를 바라보며 따지듯 심은지를 몰아세웠다. 강은우는 입을 삐죽였다. 원래도 억울했는데 한서연의 말까지 듣자 더욱 억울해졌다. ‘그래, 서연 이모 말이 맞아. 난 잘못한 게 없어. 단지 서연 이모랑 노는 게 더 좋았을 뿐인데 엄마가 괜히 옹졸하게 굴면서 나한테 화만 내잖아.’ 한서연은 강은우가 우는 모습을 보더니 눈물을 몇 방울 흘리며 말을 이었다. “언니, 어떻게 그렇게 모질 수가 있어요?” 순간, 강우빈과 한서연, 그리고 강은우까지 세 사람이 한편이 되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심은지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모질지 않아서 어린아이가 병원 복도에서 마구 뛰어다니게 놔둔 거야?” 만약 자신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강은우는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을 것이다. 그녀가 자리를 뜨려는 순간, 복도 끝에서 간호사가 달려왔다. “심은지 씨, 약 나왔습니다.” 비닐봉지에는 약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감기약은 아닌 듯했다. 강우빈은 눈빛을 가늘게 뜨더니 강은우를 내려놓고 심은지 쪽으로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파?” 심은지는 원래 대꾸할 생각이 없었지만 혹여 그가 의사에게 따로 묻기라도 할까 봐 담담히 고개를 들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병에 걸렸어. 사랑에 미치는 병.” 강우빈은 그 말투가 불쾌했으나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강은우는 엄마가 아프다는 말을 듣자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말 속 빈정거림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물어보려 했다. 그러자 한서연이 끼어들며 강은우의 손을 꼭 잡았다. “은우야, 서연 이모가 옥수수수프 만들어줄까? 네가 좋아하는 건 뭐든 만들어줄게. 우리 밥 먹자, 응?” ‘옥수수수프’라는 말이 나오자 강은우는 억울한 듯 고개를 돌려 심은지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나를 걱정하지 않아. 그렇다면 나도 엄마를 걱정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엄마가 끓여주는 옥수수수프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강은우는 굳은 표정으로 심은지를 향해 물었다. “옥수수수프를 먹고 싶은데 만들어줄 거예요, 말 거예요?” 그는 엄마가 사과하고 화해하기를 바라며 고집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아이 주제에 울먹이면서도 말투만큼은 위협적으로 굴었다. 심은지는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냉랭하게 생각했다. “안 해. 하고 싶은 사람보고 해달라고 해.” 그녀의 대답을 들은 한서연은 은밀하게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왔다. “언니, 옥수수수프 하나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은우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해요? 은우 다리에 난 상처도 아직 안 나았는데...”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 글썽이며 강은우의 손을 꼭 잡았다. “은우야, 서연 이모가 만들어줄게. 응?” “네.” 강은우는 흐느끼며 심은지를 노려봤다. “엄마, 저는 이제 엄마가 정말 싫어요. 앞으로 서연 이모만 좋아할 거예요.” 어렸지만 그는 어떤 말이 엄마를 가장 슬프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심은지가 공부하라고 강요할 때마다 그는 늘 ‘엄마는 싫어, 서연 이모가 더 좋아’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심은지는 강은우가 이 말이 자신에게 큰 상처가 될 걸 알기에 일부러 무기로 삼아 자신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은우!” 갑작스러운 강우빈의 꾸짖음에 강은우는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억울함은 더 커졌다. “됐어. 먼저 병실로 돌아가. 아주머니가 메뉴대로 만들었으니 맛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강우빈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강은우는 겁이 나서 억울한 눈빛으로 심은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심은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한서연에게 이끌려 병실로 돌아갔다. “심은지, 나 할 말...” 강우빈이 불러 세우려 했지만 심은지는 검사를 끝내고 약까지 받은 터라 그를 무시한 채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강우빈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아무래도 너무 버릇 잘못 들인 게 확실했다. 심은지는 곧 유수아에게 돌아갔다. 유수아는 어젯밤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를 데리러 온 바람에 오늘 아침 일찍 다시 서둘러 업무를 처리하러 나가야 했다. 돌아갈 결심을 굳힌 이상,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뒤에서 일을 이어가야 했다. 심은지는 노트북을 켜고 필요한 조작과 경로를 익히며 준비에 들어갔다. ... 밤이 찾아왔고 평소보다 두세 시간 일찍 퇴근해 강씨 가문으로 돌아온 강우빈은 심은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려 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집은 텅 비어 있었고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심은지 오늘 안 들어왔어요?” 그가 묻자, 주혜린은 메뉴를 건네며 대답했다. “심은지 씨는 아직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 “호칭을 바꿔요. 강씨 가문 사모님이에요.” 강우빈은 ‘심은지 씨’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마치 그녀가 이 집에 속하지 않은 사람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아, 네...” 주혜린은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겉보기와 다르게 심은지가 이 집에서 꽤 지위가 있는 사람 같았다. 강우빈과 함께 다니던 여자는 어쩌면 그저 단순 불륜녀일지도 모른다. 강우빈은 도우미 아주머니의 속마음을 알지 못한 채 미간을 찌푸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두세 시간을 기다려도 심은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전화를 걸려다 문득, 혹시 심은지가 자신을 차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그의 절친, 기연준이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아이고, 강 대표님. 혹시 대영 그룹 파산하는 거야?”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기연준의 건들거리는 말투에 강우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낮게 쏘아붙였다. “무슨 헛소리야?” “파산이 아니라면 왜 그룹 주식이 시장에 나와 있어?” 기연준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강우빈은 휴대폰 화면을 힐끗 내려다보며 기연준의 말이 맞는지 확인했다. “확실해?” 누군가 그의 그룹 주식을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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