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강우빈의 시선이 매섭게 내려앉았다. 그 위압감이 그녀의 온몸을 짓누르는듯 했다. 어젯밤, 그는 분명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심은지가 거부했음에도 그는 멈추지 못했다. 불현듯 솟구친 낯선 열기는 결코 술 탓이 아니었다. “강 대표님?”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한서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녀는 심은지에게서 배운 대로 순식간에 표정을 다잡았다. 눈 깜짝할 사이, 얼굴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순진한 미소로 물들어 있었다. “전 그냥 와인 중 아무 병이 나 꺼냈을 뿐이에요. 열자마자 디캔터에 옮겼고요. 다른 건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 혹시... 맛이 이상했나요?” 강우빈은 대답 대신 그녀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한서연은 숨을 삼키며 시선을 피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와인에는 문제가 없었지.” 하지만 그 말은 곧, 술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다는 경고와 다름없었다. “그러면요?” 한서연이 조심스레 되묻자, 그는 손끝으로 책상 위를 톡톡 두드렸다. “한 비서. 수행 비서로서 지켜야 할 선이 있어. 그 선은 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분명한 경고였다. 한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억울한 듯 목소리가 떨렸다. “어젯밤 제가 은우한테 밥을 해준 게... 은지 언니를 화나게 한 건가요? 그런 거라면 죄송해요. 앞으로는 언니 허락 없이는 은우와도 접촉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끝까지 연기를 이어가며, 모르는 척 눈물을 삼켜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나가 봐.” 짧은 답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강우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단순히 와인 때문이었을까? 은지가 내 마음을 자극해서, 내가 감춰온 무의식이 폭발한 건가?’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심은지] 그러나 끝내 발신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다음 날. 심은지는 밀린 업무를 정리한 뒤, 예약된 산부인과 검진 시간에 맞춰 회사를 나섰다. 그날 밤의 일이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혹시라도 뱃속 아이에게 영향이 있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