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나는 반지를 그의 앞에 내밀며 안쪽에 새겨진 글씨를 보여주었다. 원래 매끈하던 안쪽 고리에 누군가가 이름을 새겼는데 바로 심수혁과 주소민의 이름이었다.
예상이 적중하자 나는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심수혁은 급히 변명하려 했지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의 말대로 당신이 지나친 짓은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이미 주소민에게 기울어졌어. 만약 우리가 헤어지지 않으면 그 여자의 이름이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스며들었을 거야.”
“아마 당신은 무심코 나에게 그 여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줬을 수도 있고 밤중에 자다가 그 여자의 이름을 불렀을 수도 있겠지.”
“내가 당신을 용서하려면 당신이 날 배신한 모든 순간을 용서해야 하고 당신 때문에 찢어질 듯 가슴 아파했던 나 자신도 용서해야 해. 그리고 당신은 내가 계속해서 의심하고 질투하는 걸 참아야 할 거고.”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말해 봐. 심수혁,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어?”
심수혁은 더 이상 말이 없었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눈가가 붉어졌다. 나는 그의 마음속에 이미 답이 있다고 믿었다.
“여기까지 하자.”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 뒤 돌아서서 바로 걸어 나왔다. 이번에 심수혁은 쫓아오지 않았지만 뒤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회와 절망이 섞인 울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자신이 했던 짓을 후회해서 우는 게 아니라 이런 벌을 받을 줄 몰랐기에 울부짖는 것이라는 걸 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똑같은 길을 선택할 것이다.
예상대로 심수혁은 소송에서 졌고 상대측은 계약금의 세 배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는데 그 금액은 거의 1억 원에 가까웠다.
회사 자금이 부족해서 심수혁은 자신의 적금을 몽땅 꺼내고 값나가는 물건도 전부 팔았다. 그래도 몇천만 원이 부족해서 주소민을 지내게 하려고 몰래 사뒀던 작은 아파트까지 팔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집을 팔려 할 때 등기부 등본을 확인하곤 경악했다. 집주인이 이미 ‘주소민’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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