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9화 직접 들어가다
“포기요?”
황진명은 머리가 아파왔다.
“우리 직원이 아직 안에 있는데 이렇게 포기하신다고요? 아직 시간도 있는데 포기하신다니 폭탄 해체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직책도 다하지 않은 채 도망칠 수 있습니까?”
이때 황진명은 살짝 화가 나 말이 조금 거칠어졌다.
폭탄 해체 전문가는 황진명을 밀어내며 말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그 폭탄을 해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선을 잘못 자르기라도 한다면 당장 폭탄이 터져버릴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황진명 씨, 이건 언제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전 이런 위험을 무릅쓸 수 없고요.”
황진명은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
“당신의 직책이 바로 폭탄을 제거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은 돌보지도 않은 채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겁니까? 우리 직원이 저 안에서 죽는 걸 지켜보기만 하라는 말입니까?”
폭탄 해체 전문가는 언성을 높여 말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폭탄의 구조는 너무 복잡해서 억지로 뜯으면 제 생명에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전 포기하는 거고요.”
“저희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안전부터 돌봐야 합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저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게다가 안에 묶여 있는 건 우리나라 국민도 아니니 더군다나 제 목숨을 걸 필요가 없고요.”
“당신.”
황진명은 화가 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때 크로윌은 이미 부하들을 시켜 주위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할 수 있는 건 폭탄이 터지기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무슨 상황입니까?”
바로 이때, 백우상이 휠체어에 탄 조경운을 이끌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크로윌의 부하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두 분, 여기 중원각에 설치된 폭탄이 곧 터집니다. 위험하니 얼른 대피해 주세요.”
“꺼져.”
백우상은 고개를 돌려 그 부하를 쳐다보더니 욕설을 퍼부었다.
이 경찰관이 잠깐 멈칫하다가 화를 내려는 찰나 크로윌이 급히 걸어왔다. 그는 발로 자신의 부하를 걷어차더니 말했다.
“눈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백우상 사장님과 조경운 사장님도 몰라봐?”
말하면서 크로윌은 싱긋 웃으며 조경운과 백유상을 쳐다보았다.
“두 분, 저희는 이미 최선을 다했습니다.”
“헛소리하지 마세요.”
벡우상은 크로윌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시간이 촉박했기에 얼른 바리케이트 안으로 들어와 황진명에게로 향했다.
그 폭탄 해체 전문가는 이미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황진명과 중원각의 직원들은 여전히 이곳에 서있었는데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만약 정말 폭탄이 폭발한다면 중원각 안의 동료들과 함께 죽을 계획이었다.
“백우상 사장님, 조경운 사장님.”
백우상과 조경운이 들어오는 것을 봄 황진명이 가장 먼저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저희 직원 두 명이 지금 주방에 폭탄과 함께 묶여 있습니다. 그들을 구하려면 반드시 폭탄부터 해체해야 합니다.”
“하지만 폭탄 해체 전문가는 저 폭탄이 구조가 너무 복잡해 포기하라고 합니다.”
“그를 탓할 필요 없습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니까요.”
백우상은 황진명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먼저 사람들과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있으세요. 폭탄 해체는 저한테 맡기고요.”
전에 말했듯이 백우상은 무기 전문가였다. 그러므로 천왕궁의 주인인 하천마저도 이 여자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는지 절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백우상은 폭탄에 대해서도 꽤 잘 알고 있었다.
“이리 와서 조경운 사장님 좀 밀어드려.”
백우상은 조경운의 휠체어에서 손을 떼고 중원각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옆에 있던 황진명 등은 모두 깜짝 놀랐다. 천왕궁 5대 천왕 중 한 명인 백우상이 직접 폭탄을 해체하러 간다니, 만약 폭탄 해체에 실패라도 한다면 백우상은 틀림없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천왕궁 쪽에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백우상 사장님, 그건 절대 안 돼요.”
황진명이 급하게 말했다.
백우상은 황진명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금 황진명은 기어코 폭탄 해제 전문가에게 폭탄을 해체하라고 했으면서, 지금은 백우상더러 해체하러 가지 말라고 하니, 참 모순적이었다.
그리고 백우상이 말한 바와 같이 이곳은 한국이 아니므로 이곳의 폭탄 해체 전문가들은 이런 위험을 거절할 권리가 있었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백우상이 한 걸음 내딛자 조경운이 그녀를 잡았다. 백우상은 조경운을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경운, 오늘 나를 가로막는다면 앞으로 평생 널 다시 보지 않을 거야.”
“막으려는 게 아니야.”
조경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 혼자 들어가는 건 지켜볼 수 없어. 그러니 같이 들어가려고.”
“그건 안 돼.”
백우상이 곧바로 거절했다.
“넌 폭탄의 구조도 모르잖아. 나랑 들어가면 방해만 될 거야. 그러니 여기 있어.”
조경운은 매우 확고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상, 시간이 얼마 없어. 이런 걸 따질 때가 아니야. 너도 알잖아, 나 조경운이 내린 결정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이 중원각은 우리가 함께 개업한 가계야. 네가 사장인 동시에 나도 사장이야. 그러니 오늘 난 이곳 중원각이 폐허가 되더라도 반드시 들어가야겠어.”
백우상은 갑자기 침묵했다. 비록 조경운은 죽어도 중원각과 함께 하겠다고 하나 사실은 조경운이 그냥 자신과 함께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백우상과 조경운은 비록 관계를 확립하진 않았지만 둘 사이에는 이미 끈끈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러므로 조경운은 백우상 혼자서 위험을 무릅쓰는 걸 지켜볼 수 없었다.
지금 중원각에 들어가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조경운은 백우상과 함께하고 싶었다.
“내 휠체어 밀어줘.”
평소 조용해 보이는 조경운도 사실은 몸에는 광포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만약 죽게 되면 내 탓하지 마.”
백우상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고 조경운의 휠체어를 밀고 중원각 안으로 향했다. 비록 백우상의 얼굴은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었다.
조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널 탓하진 않아. 넌 온화한 성질의 사람이 아니니 황천길에서 혹시 저승사자의 미움을 사면 어떡해? 내가 널 도와줘야지.”
두 사람은 웃으면서 중원각으로 들어가려 했다. 옆에 있던 폭탄 해체 전문가는 뻘쭘해져 말했다.
“두 분, 방폭복이라도 입으시지요.”
백우상은 고개를 돌려 그 폭탄 해체 전문가를 노려보았다.
“시간 없습니다. 게다가 폭탄의 위력이 그렇게 강하다면서 방폭복을 입는다고 한들 소용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