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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7장

잘 보이려고 웃음 짓던 윤서는, 지성의 핸드폰을 울려대는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얼굴이 굳어 내렸다. 아빠의 이름이 떡하니 적혀있었던 것. “저희 아빠가 왜 또 연락한 거예요?” “나윤서 씨가 모르는데 내가 알까? 가서 아버지가 대체 뭘 했길래 회사가 그 지경이 됐는지 잘 물어봐요.” 지성의 못마땅한 대답이 들려왔다. “전화 받지 마요, 분명 돈 달라는 요구일 거예요. 제가 가서 잘 말씀드릴게요. 이 정도로 최악은 아니었는데. 아들도 키워야 할 사람이 왜 돈을 물 쓰듯 하겠어요?” 한마디 한마디가 지성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윤서마저 아는 사실을 과연 그가 모를까. 나성호는 지금 그를 현금 인출기 취급하고 있는 거다. 윤서의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쯤은 인내할 수 있겠지만 끝도 없이 피를 빨아먹으려는 건 용납지 못한다. 아빠가 윤서의 마음을 완전히 끊어냈다. 더는 지성에게 뭘 묻지도, 입도 뻥긋하지 못하겠다. 윤서에게 남은 건 끝없는 수치심 뿐이었다. “아빠가 얼마를 요구했든 다 제 비용으로 처리하세요. 제가 갚을게요.” 지성이 고까워하며 입매를 비틀었다. “하, 다 갚을 수나 있고?” 윤서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듣기 거북해도 지성이 한 건 맞는 말이다. 그의 집안에 빚진 건 진작 갚을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너그러운 분들이라 더는 붙잡고 늘어지지 않은 게 그저 고마울 따름. 게다가 그녀를 지성의 와이프로 여기는 어른들로 인해 윤서는 내내 죄책감을 느낀다. “지성 씨 말이 맞아요, 갚지 못할 정도죠. 선택권만 주어진다면 저도 이런 집안에서 태어나긴 싫어요.” 차라리 윤서는 평범한 집안 딸이 되고 싶다, 이런 아빠에게 발목 잡히기도 싫다. 지성이 집까지 바래다준 뒤에야 윤서는 불현듯 제가 이 집안을 극도로 혐오한다는 걸 깨우쳤다. 이런 윤리에 어긋나는 생각을 해보긴 처음이다. 여태껏 힘들게 키워준 아빠에게 어떻게 이런 싫증을 품을 수 있지? 부모의 채무를 떠안는 것마저 자식의 의무라지만 아빠의 욕심은 갈수록 지나치다. 윤서네 집에 정말 그런 큰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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