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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우리 삼촌 어때?

“됐어.” 신해정은 혐오가 묻은 얼굴로 박준혁의 말을 끊었다. “내 일은 이제부터 너랑 아무 상관 없어. 네가 간섭할 필요도 없고.”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박준혁은 문 뒤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전생에서 함께했던 2년 동안, 신해정은 늘 순하고 얌전했다. 심지어 약간의 비위 맞춤까지 섞인 태도였다. 주인의 말에 고분고분한 고양이와 같아 이렇게 날을 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날카롭게 반응한다는 건, 아직도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랑이 증오로 바뀐 것뿐이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그녀가 얼마나 비굴할 정도로 자신을 사랑했는지를. 이번에도 아마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화가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오면 오늘 있었던 일쯤은 잊어버리고, 결국 울면서 다시 돌아와 다시 만나기를 요구할 게 분명했다. 그는 그저 그녀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차분해지길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복도에서는 서정아가 안절부절못한 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신해정의 모습이 보이자, 그녀는 곧장 다가왔다. “어때? 그 쓰레기가 뭐래?” 신해정은 담담하게 말했다. “별말 없었어. 다 쓸데없는 소리였고, 나 약혼 깨기로 했어.” 서정아는 이를 악물었다. “진짜 사람 볼 줄 몰랐네. 박준혁, 겉으로만 멀쩡한데 속은 저렇게 더러울 줄이야. 처음에는 자기가 좋다고 들이대서 온 세상이 다 알게 만들더니, 왜 이제 와서 저 난리라야. 재수 없어.” 말을 하다 말고, 그녀는 신해정의 얼굴을 살피며 걱정스럽게 덧붙였다. “해정아, 근데 갑자기 파혼하면 너희 할머니한테는 뭐라고 말할 거야? 요즘 몸도 안 좋으신데, 또 네 결혼만 기다리고 계시잖아.” 신해정의 표정이 잠시 가라앉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는 늘 바빴고, 그녀는 거의 할머니 김혜자 손에서 자랐다. 김혜자는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고, 요즘 들어 건강도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다. 마지막 소원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녀가 평생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걸 바라고 계셨다. 예전에 박준혁이 약혼자 자격으로 한 번 집에 온 적이 있었다. 태도도 단정했고, 조건도 나무랄 데 없어, 김혜자는 그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지금 와서 갑자기 약혼이 깨졌다고 말하면, 그 충격을 할머니가 견뎌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신해정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돈 주고 사람 하나 구해서 가짜 결혼식이라도 해야지. 할머니 눈 안 좋으시잖아. 너무 가까이만 안 가면, 앞에 선 사람이 박준혁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 하실 거야.” 서정아는 그 말을 듣고 입을 벌린 채 멍해졌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이 반짝였다. “그렇다면 우리 삼촌 어때? 너보다 다섯 살만 많고, 얼굴은 박준혁 그 인간보다 백 배는 잘생겼어. 성격도 괜찮고, 사람 됨됨이도 확실해. 무엇보다 요즘 집에서 결혼하라고 난리라서 머리 아파 죽겠대. 너랑 서로 이해관계 맞으면 딱이잖아.” 신해정은 의아하게 물었다. “삼촌? 그런 사람 있는 줄 처음 알았는데?” “그동안 계속 해외에 있었거든. 최근에야 한국 들어와서 내가 일부러 말 안 했어.” 서정아는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 “내가 소개하는 사람이야. 믿어도 돼. 네가 괜찮으면, 오늘 저녁에라도 만나게 해 줄까?” 신해정은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였고, 친구에 대한 신뢰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부탁할게.” 병원을 나온 뒤, 신해정은 자신의 아파트로 가지 않고 바로 택시를 타고 신씨 가문의 본가로 향했다. 고요한 거실에서, 할머니는 오래 키운 늙은 고양이를 안고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단순한 동작인데도 예전보다 훨씬 힘에 부쳐 보였다. 전생에 신해정이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마지막 바람을 이룬 사람처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다시 마주한 할머니의 온화한 얼굴에 그녀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신해정은 몇 걸음에 달려가 할머니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김혜자는 잠시 놀란 듯하더니 이내 웃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곧 결혼할 애가 아직도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네.” 신해정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너무 소중해서 그래요.” 김혜자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박준혁은 믿을 만한 사람이야. 너를 맡겨도 될 사람이라 난 마음이 놓여. 앞으로 둘이 잘 살아. 그럼 할머니는 더 바랄 게 없어.” 신해정의 가슴이 욱신거렸다.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네. 할머니 말 다 들을게요.” 티가 나지 않게, 그녀는 곧 피곤하다는 핑계를 댔다. “할머니, 나 좀 쉬고 싶어요. 방에 들어갈게요.” “그래, 얼른 가서 쉬어.” 익숙한 방으로 돌아온 신해정은 문을 잠그고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잠시 후,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앨범을 열고 VIP 병실 앞에서 몰래 찍어 둔 그 영상을 찾아 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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