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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3년 전 내가 꾸며 놓았던 아늑했던 집은 이제 전혀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따뜻한 노란색 커튼은 짙은 남색으로 바뀌었고, 내가 하나하나 고른 장식품들도 자취를 감췄다. 내가 생활의 기본이라 여겼던 LCD TV마저 스크린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낯설어진 집 안으로 발을 들이기도 전에 박규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규리 이모.” 나는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규리 이모, 내일 찾아뵐 생각이었어요.” 유학 가기 전 부모님 외에 나를 가장 아껴준 사람은 고지오의 어머니였다. 예상과 달리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재이야, 앞으로 다시는 고지오 만나지 마.” 나는 얼굴이 굳어져 버렸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떡 벌렸다. “뭐... 뭐라고요?” “우리 고씨 가문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며느리를 맞을 수는 없어.” 내가 대답이 없자 박규리는 말을 이었다. “심씨 가문에 사위로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는데 왜 자꾸 지오에게 매달리는 거야?” 내 얼굴에는 아직 미소가 굳어있었지만 쏟아지는 눈물은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내 심장을 후려쳤다. 나는 박규리의 이런 태도가 혹시 고지오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지 알고 싶었다. 고지오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낯선 번호로 문자를 받았다. 유민아의 SNS 게시물 캡처 화면이었다. [개자식이 용서를 빈다고 쇼하는 중이야.] 사진 속에는 고지오가 유민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10캐럿짜리 핑크빛 다이아몬드 반지를 정성껏 끼워주고 있었고 옆에는 몇조 가치의 보석 세트가 놓여 있었다.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이 순간 모든 것이 너무 허탈하게 느껴졌다. 나는 SNS 캡처와 통화 녹음 파일을 모아 고지오에게 보냈다. [이게 네가 해결하는 방식이야?]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얼굴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것을 닦아냈다. 이때 고지오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고지오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다가와 나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재이야, 내 말 들어봐. 이건 그냥 장난일 뿐이야. 걔들이랑 게임하다 져서 몰래 찍은 사진이야. 내일, 내일 민아는 이사 갈 거야. 엄마는... 엄마는 그냥 널 걱정해서 그런 거니까 내가 잘 이야기해볼게.” 그는 말을 마치고 입술을 꾹 다문 채 내 손을 잡았다. 주머니에서 탄산음료 캔 탭을 꺼내 약지에 애틋하게 끼워주었다. “재이야, 우리 처음에 했던 캔 탭 약속 기억나? 나 고지오는 쉽게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너랑 결혼하겠다고 했으면 반드시 결혼할 거야.” 그때 서울에는 ‘고씨 가문’이 없었고 그들의 집안은 졸부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고지오는 항상 내 앞에서 자신감이 없었고 내게 어울릴 만한 자리까지 오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라고 했다. 나는 그때 웃으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었다. “진심으로 나와 결혼하고 싶다면 캔 탭으로도 난 괜찮아.” 하지만 그때 그는 뭐라고 대답했지? “재이야, 넌 제일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있어. 내가 꼭 제일 비싼 반지를 사서 세상에서 가장 성대한 프러포즈를 해줄게.” 유민아의 SNS 게시물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손가락에 끼워진 캔 탭을 바라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네 눈에는 심씨 가문이 그렇게 하찮은 거야? 아니면 네 약속은 캔 뚜껑 고리 하나 값어치밖에 안 돼?” 지금 고지오의 지위를 생각하면 아무도 그의 체면을 깎아내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내 말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고 마침내 인내심도 바닥났다. 그는 짜증스럽게 미간을 짚었다. “재이야, 넌 왜 이렇게 속물이 됐어?” 나는 캔 뚜껑 고리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고지오에 대한 마지막 미련과 함께. “고지오.” “고지오, 상감마마가 왔다.” 나와 유민아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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