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다음 날 아침, 나는 집사가 가져다준 서류를 보며 식사를 했다.
함께 온 것은 입에 썩은 양말이 틀어막힌 유민아였다.
그녀의 자료는 몇 장 안 되어 금세 다 읽었다.
알고 보니 유민아는 고지오가 지원하던 빈곤한 대학생이었는데 나중에 특채로 고성 그룹에 들어갔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고지오는 유민아를 ‘여자 형제’라고 부르며 각 계층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줬다.
심지어 그녀의 앞길을 닦아주기 위해 ‘민아 펀드’까지 만들어주었다.
‘유민아를 상류층 비즈니스계에 넣고 싶어? 흠, 내가 허락할 것 같아?’
식사를 마친 나는 태연하게 유민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악의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준호가 다가가 그녀의 입에 틀어막고 있던 것을 빼냈다.
“심재이. 네가 날 납치한 거 지오가 알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넌 아직도 3년 전 그 심씨 가문의 아가씨인 줄 알아?”
나는 미친 듯이 소리치는 이 여자를 보며 고지오가 왜 유민아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재이는 단순히 심씨 가문의 아가씨 일 뿐만 아니라 문씨 가문의 손녀이기도 해.”
유민아가 멈칫하며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라 했다.
“재벌중의 재벌이라고 불리는 문태수 그분이 내 외할아버지야.”
유민아가 멍해지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얼굴이 삽시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아니야. 그럴 수 없어.”
나는 가볍게 웃었다.
“이제야 기억이 난 모양이네.”
“아가씨, 문신 시술사들이 도착했습니다.”
나는 집사 뒤에 선 열댓 명의 문신 시술사들을 보며 손가락으로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유민아를 가리켰다.
“얘가 문신을 좋아하니까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유민아는 공포에 질려 발버둥쳤지만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단단히 눌러붙잡았다.
문신 시술사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그녀의 몸에 ‘1급 침대 파트너’, ‘고지오가 왔던 곳’, ‘필수 방문지’, ‘공공버스’ 등 글을 가득 새겨 넎었다.
유민아는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고 욕을 하다가 나중에는 울부짖으며 애원하더니 결국 기절해 버렸다.
모든 문신이 끝났을 때 고지오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 바닥에 거의 알몸으로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유민아를 보자 그의 눈은 순식간에 벌겋게 충혈되었다.
“심재이! 지금 무슨 짓이야? 너, 너 어떻게 이렇게 잔인해질 수가 있어?”
“민아는 그냥 어린애잖아. 민아가 앞으로 사람 앞에 어떻게 나서라고 이러는 거야? 넌 민아 평생을 망치려는 거야?”
나는 3년 전 나를 보호하던 것처럼 유민아 앞에 막아서는 그를 보며 차갑게 대답했다.
“고지오, 난 너에게 기회를 줬어.”
“심재이, 우리 엄마 말이 맞았어. 넌 우리 고씨 가문에 들어올 자격이 없어. 네가 이렇게 무정하고 독해졌으니 나도 더는 옛정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 우리 사이의 혼인은 취소야. 난 민아를 아내로 맞이할 거야. 다 네가 자초한 일이라고.”
유민아를 감싸 안고 안절부절못하며 마음 아파하는 고지오의 모습을 보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빨리 변할 수 있을까?’
“심재이, 네가 심씨 가문만 믿고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거라면... 그 심씨 가문도 이젠 존재할 필요가 없어졌어.”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고지오가 유민아를 위해 심씨 가문을 없애버리겠다고 말할 줄이야, 그것도 유민아의 심기를 건드린 것에 대한 복수라고 여기다니.
‘한심한 놈, 고씨 가문이 지금 서울에서 대다난 집안이라도 되었다고 착각하나 봐.’
고지오가 흐느껴 우는 유민아를 안고 나가려다 급히 들어오던 사람과 부딪혔다.
“고... 고 대표님, 회사 주주들이 모두 투자를 철회했고 협력사들도 다 회사 앞에서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