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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강이설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고요한 병실 안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조아린 후 기절하자 신재영은 곧바로 경호원들에게 지시해 강지연의 병실에서 그녀를 내던지듯 끌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지연이 눈 더럽히게 하지 말고 얼른 끌어내.” 강이설은 거울 속 이마에 감긴 붕대를 한참 바라보다가 비웃듯 웃었다. 웃음 끝에는 눈가에 눈물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질 듯 말 듯 달려 있었다. 요 며칠간 양가 이사회 임원들로부터 여러 통의 연락이 왔다. 늘 회의에 한 번도 빠지지 않던 신재영은 요즘 하루 종일 강씨 가문 둘째 딸의 뒤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데이트 때문에 중요한 회의를 몇 차례나 미뤘고 그 여파로 그룹 전체의 사업 일정과 시간 관리가 엉망이 되었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강지연이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신재영이 그녀를 위해 이토록 선을 넘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 사랑의 힘일지도 모른다. 강이설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변호사에게 이혼 진행 상황을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답장이 오기도 전에 주치의가 먼저 병실로 들어왔다. “강이설 님, 평소 드시던 비타민 성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장기간 복용하실 경우 임신이 극도로 어려워질 겁니다.” 의사의 말을 들은 강이설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 비타민은 신재영이 직접 챙겨준 것이었고 몸조리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건넨 것이었다. 결혼 첫해 그녀는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임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산의 고통을 겪었다. 그녀가 며칠 밤을 통곡하며 잠들지 못하던 때 그는 이 비타민 병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일부러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 “아이 없어도 괜찮아. 난 네가 건강하기만 하면 돼.”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모든 다정한 말들은 그녀에게 약을 먹이기 위한 속임수였을 뿐이고 그는 애초에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갖는 걸 원하지 않았다. 강이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에 손을 올렸다. 아이를 갖고 싶어 그와 관계를 가지는 날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를 유혹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와서 보니 참으로 초라하고도 비참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묘비가 부서진 분노와 그에게 속고 있었다는 원망이 뒤엉켜 강이설은 퇴원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 신재영의 서재를 박살 냈다. 방 안이 완전히 난장판이 된 뒤에야 신재영이 돌아왔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지만 표정은 아주 담담했다. “그래서 화 좀 풀렸어? 묘지 일은 내가 사람 시켜서 처리해 뒀어.” 신재영은 새 주소가 적힌 쪽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잠깐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 자리는 지연이한테 양보해. 앞으로 네가 뭘 원하든 내가 다 보상해 줄 테니까.” 강이설은 차갑게 픽 웃었다. “앞으로요? 우리한테 더 이상 앞으로가 없어요.” 신재영이 미간을 구기며 더 물으려고 했지만 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끊고 나자 그의 눈에 남아 있던 옅은 미안함은 어느새 서늘한 분노로 변해 있었다. “감히 지연이한테 독을 먹여? 강이설, 네가 이렇게 악랄한 사람일 줄은 몰랐군!”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강이설의 목을 꽉 움켜쥐었다. “다행히 병원에 있어서 제때 위세척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네 손에 죽을 뻔했어!”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강이설의 얼굴은 숨이 막혀 붉게 변했다. “아직도 발뺌해?! 지연이가 말했어. 오후에 네가 보낸 비타민만 먹었다고!” “난... 나는 아니에요...” 강이설의 시야가 점차 흐릿해지고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 ‘하, 강지연을 이렇게까지 신뢰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지금 확인조차 하지도 않고 나한테 죄를 묻고 있잖아!' 강이설은 그대로 거칠게 바닥에 내던져졌다. “네가 임신하지 못한 건 오로지 내 결정이었어. 이제 알았으면 화풀이든 원망이든 나한테 해!” 신재영의 눈빛은 섬뜩할 정도로 가라앉아 당장이라도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삼킬 듯했다. “그때 네게 그 약을 먹인 걸 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강이설, 네 배에서 나올 아이도 분명 너처럼 악랄하고 고집불통이었을 테니까!” 강이설은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있는 힘껏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짜악! 그 순간 신재영의 분노가 폭발했고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이자 경호원들이 달려와 강이설을 붙잡았다. “악어 연못에 던져.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절대 꺼내주지 마.” “신재영! 당신 미쳤어요?!”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몸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아 그대로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동하는 내내 강이설의 상처는 다시 터졌고 도움을 청할 힘조차 없었다. 신재영은 그저 담담하게 시계를 볼 뿐이었다. “1분 남았어. 아직도 네 잘못 인정 안 하면 정말로 악어 연못에 담기게 되겠지.” 강이설은 그가 선고하듯 시간을 재는 모습을 보며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냉기를 느꼈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연못에 던져지고 흉포한 악어가 허벅지를 물어뜯는 순간에서야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방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고 그녀는 필사적으로 기어 올라가려고 했지만 경호원은 신재영의 눈짓에 따라 그녀를 다시 연못 안으로 걷어차 버렸다. 피로 물든 연못 속에서 강이설은 힘을 잃고 서서히 가라앉았다. 의식을 완전히 잃기 직전에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신재영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았다. 쓰디쓴 웃음과 함께 맺힌 눈물 한 방울이 연못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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