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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내가 왜? 너 나 알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싸늘한 바람이 일었고, 활짝 웃던 소은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당황한 그녀는 표정이 점점 굳어갔고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현우 씨, 나 소은지... 몰라요?” 쌔앵. 음산한 바람 소리와 함께 거센 힘이 느껴지는 순간, 소은지는 꽃다발과 함께 갑자기 들이닥친 경호원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 나간 짓은 딴 데 가서 해요. 자기 주제도 모르고 감히 우리 박 대표님한테 들러붙다니!” 경호원이 호통치자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발칵 뒤집혔다. 소은지 또한 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미처 받아들이지 못했다. “박 대표님?” 무릎이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뼛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이 전해졌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멍하니 고개를 들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어느덧 새하얘졌다. 3년간의 연애가 어쩌다 ‘들러붙기’가 된 걸까? 가난에 찌든 택배기사였던 남자친구가 하루아침에 대표님이라니? 그때,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어쩐지 낯익다고 했어! 우진 그룹의 신임 대표이자 박씨 가문 도련님, 박현우 아니야?” “지난주에 결혼한다는 얘기 나왔잖아. 우진 그룹 공식 계정에도 올라왔던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은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단숨에 호기심에서 경멸과 분노로 바뀌었다. “와, 저 여자 진짜 뻔뻔하네. 지금 임자 있는 남자한테 청혼하는 거야?” “재벌가에 빌붙어서 첩이라도 되려는 거 아냐? 빨리 사진 찍어서 신상 털어!”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시 때문에 소은지는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우진 그룹 대표? 박씨 가문 도련님? 그녀는 팔로 눈 부신 불빛을 가린 채 허둥지둥 해명했다. “아니에요, 다들 착각하신 거예요. 제 남자친구가 우진 그룹 대표라니? 저도 불륜 같은 거 저지른 적 없어요. 우리는 그냥 평범한 연인일 뿐... 현우 씨! 뭐라도 말 좀 해봐요!” 소은지는 초라하고도 간절한 눈빛으로 박현우의 넓은 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마저 그의 냉담한 한마디에 산산조각이 났다. “다음부터 이런 파렴치한 여자가 나타나면 바로 쫓아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에 소은지는 흠칫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만큼은 너무도 생생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이목구비는 물론 체격도 너무 익숙해 절대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분명, 매일같이 함께했던 그 박현우였다. 어쩌다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프러포즈를 준비하면서 그가 받아들일 수도, 현실적인 이유로 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이런 결과일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떨리는 목소리에 의아함과 혼란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왜 나를 모르는 척하는 거죠? 대체 왜?” 소은지의 절박한 눈빛을 보고도 박현우는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이내 뒤돌아서 사람들과 기자들 앞에서 선을 그었다. “이 여자가 어디서 내 연락처를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약혼녀인 척 전화해서 나를 불러내 공개적으로 청혼까지 했어요.”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선언합니다. 평생 한결같은 마음으로 예비 신부만 사랑할 것이며, 혹시라도 나한테 들러붙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사람 있으면 변호사단을 동원해 법적 조치를 취할 거예요.” 확신에 찬 소신 발언은 소은지의 얼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온기마저 빼앗아 갔다. 반면, 사람들의 환호를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박현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나자 구경꾼들이 일제히 소은지에게 몰려들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거예요? 우진 그룹 대표가 재벌 약혼녀를 놔두고 당신 같은 보세 옷 입은 신데렐라한테 마음 줄 거로 생각했어요? 혹시 망상 있는 거 아니에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었던 모양인가 봐요. 화제 만들어서 라이브로 장사하려고. 진짜 전형적인 수법이잖아요.” “얼굴이 이렇게 창백한 거 보니, 어디 아프든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던가 둘 중 하나겠죠.” 욕설과 억측이 난무하며 소은지의 숨통을 점점 옥죄어 왔다. “아니야... 이건 꿈이 아니야.” 소은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내 휴대폰을 꺼내 채팅과 통화 기록을 뒤지며 그들이 사랑했던 증거를 찾으려 했다. 3년간 함께한 시간이 꿈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도 돌아오는 건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는 기계음뿐이었다. 그렇다면 채팅 기록은 어떨까? 그녀가 계정에 로그인하자마자 알림 문구가 나타났다. [귀하의 계정은 보안 문제로 인해 사용 정지되었습니다.] “사라졌어. 모든 기록이 다 사라졌네...” 3년간의 열애 끝에 그녀는 마침내 유일한 사랑을 얻었다고 믿었다. 애인의 품에 안겨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여겼지만 현실은 모든 것이 거짓임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사랑받은 적도, 남자친구가 있었던 적도 없었다. 소은지는 맥이 풀린 나머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눈부신 조명이 그녀의 초라하고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이때, 정장 차림의 한 여자가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더니 소은지를 일으켜 세우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변호사 한유정입니다. 누구든 인신공격하면 고소당할 줄 알아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법적 책임을 지게 할 겁니다!” “은지야, 가자.” 한유정은 소은지를 데리고 인파를 헤치며 광장을 빠져나왔다. 공원에 도착한 소은지는 길가 벤치에 앉았다. 눈시울은 빨갛게 부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걸인처럼 산발이 되었다. 한유정은 안타깝고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네 남자친구가 우진 그룹 도련님이랑 이름만 같은 줄 알았지... 이게 다 내가 제대로 안 알아본 탓이야. 아니, 어떻게 이런 개 같은 놈이 있어? 택배기사인 척하면서 널 가지고 놀다니.” 그녀의 말에 소은지는 입안에 쓰라린 맛이 번졌다. 어쩐지 그렇게 오래 배송했는데도 손톱 사이가 늘 깨끗했고, 손바닥에는 굳은살 한 점조차 없었다. 3년째 타던 트럭조차 새것처럼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사실이 모든 걸 설명해 주었다. 박현우는 내내 그녀를 가지고 놀았을 뿐이었다. 곳곳에 허점이 존재하는 연애 게임이었지만 이 사기극에 푹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소은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눈빛에는 생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아픔이 가신 뒤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이 우진 그룹 도련님의 심기를 잘못 건드린 적이라도 있었나? 대기업 후계자 신분까지 내려놓고, 추운 겨울밤에 그녀의 앞에 나타나 허름한 집에서 함께 지내며 택배기사 옷차림으로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꼬박 3년이나 위장할 정도라니.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당최 짐작이 안 갈 때, 낯선 사람이 그녀의 앞을 지나가며 손바닥에 쪽지를 억지로 쥐여 주었다. 펼쳐 보니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진실을 알고 싶어? 노민 그룹 옥상으로 와, 다 얘기해 줄게.] 박현우의 글씨체였다. 한유정이 다가와 쪽지를 보더니 두 눈을 부릅떴다. “개자식이! 방금까지 널 모욕해 놓고 이제 와서 부른다고? 절대 좋은 일 아니니까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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