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윤초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우주 소설에 나오는 그 곤충족 말하는 건가? 그러니까 내가 지금 우주 소설 속에 들어온 거야, 아니면 우주 세계관에 넘어온 거야? 하지만 크게 다를 것도 없네. 어쨌든 원래 세계는 아닌 게 분명하니까.’
“어느 연맹 출신이야? 어떻게 혼자 숲에 있었지? 보호자는 어디에 있어?”
늑대인간은 한꺼번에 여러 질문을 퍼붓듯이 했다.
그는 곤충족에게 당한 후 숲을 가로질러 자신의 연맹으로 서둘러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치료사 여성체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리던 중 갑자기 뭔가에 맞아 기절했고 깨어났을 때 이 여성체가 자기 위에서 자고 있었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고 그녀가 깨길 기다렸다.
‘하지만 자제력을 잃을 줄이야. 다행히 여성체를 다치게 하지는 않았어.’
“나?”
윤초원이 대답하기도 전에 늑대인간은 또다시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어라, 그냥 순수 인간이야?”
“응.”
윤초원은 망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사람이었다. 이 남자처럼 동물의 귀와 꼬리가 없으며 그가 말한 대로 그냥 인간이었다.
윤초원의 망설이는 반응을 본 늑대인간의 눈에 동정심이 스쳤다.
“혹시 다른 여성체들이 괴롭혔어?”
그는 고개를 숙이며 머리 위의 동물 귀를 살짝 움직였다.
“만약 남성체가 당신을 다치게 했거나 화나게 했다면 내가 혼내줄 수 있는데 여성체는...”
“여성체는 왜?”
윤초원은 반사적으로 물었다.
“여성체는 태생적으로 남성체보다 지위가 높아. 순수 인간 혈통의 여성체라도 남성체보다 우대받지. 몰랐어?”
늑대인간은 윤초원의 반응을 보고 놀란 듯했다.
그는 지금 윤초원을 데리고 숲을 가로질러 연맹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신은 순수 인간 여성체다 보니 보호자를 자처할 남성체도 없어서 이런 기본 상식조차 가르쳐주지 않은 걸 거야.”
늑대인간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고 동정의 의미가 더 강했다.
“내 생각엔 당신은 독수리 연맹 출신인 것 같은데. 그쪽은 약자를 괴롭히기로 유명하거든. 만약 원한다면 나와 함께 백호 연맹으로 가는 게 어때?”
“음...”
윤초원은 망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계속 순수 인간이라고 말하는데, 순수 인간 여성체를 본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야?”
윤초원은 늑대인간 곁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순수 인간은 다른 여성체들처럼 기력 레벨을 가지고 있지 않아. 남성체를 진정시킬 수 없지.”
늑대인간은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여성체 자체가 희귀해서 순수 인간 혈통의 여성체도 연맹에서 어느 정도 대우는 받아. 그래서 내가 다른 여성체들이 괴롭히지 않았냐고 물어본 거야. 남성체가 여성체를 해치면 처벌받거든. 그리고 우주 대륙에 순수 인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 백호 연맹에는 없어서 더 놀랐지.”
늑대인간은 윤초원이 따라오기 힘들까 봐 걸음을 늦췄다.
“그렇구나.”
윤초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인간은 윤초원을 불쌍하게 여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혹시 괴롭힘을 당해 멍청해진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한 늑대인간은 다시 걸음을 멈추고 윤초원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니면 독수리 연맹에서 멍청하고 기력 레벨 없는 순수 인간 여성체를 기르기 싫은 나머지 몰래 숲에 버린 걸지도 몰라.’
늑대인간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어쨌든 내가 주웠으니 이제 백호 연맹의 소중한 여성체야! 앞으로 백호 연맹이 이 여성체를 보호해 줄 거야! 하지만 돌아가면 병원에서 이 여성체의 신체와 지능 검사를 먼저 해봐야겠어.’
“보호자는 있어?”
늑대인간은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듯 물었다.
그는 윤초원이 독수리 연맹 출신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너무 멍청해 보이니 자기가 어느 연맹 소속인지도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백호 연맹과 독수리 연맹 외에도 크고 작은 연맹이 십여 개는 더 있었으니까.
그는 윤초원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덧붙였다.
“매일 함께 지내며 당신의 일상을 돌보고 보호해 주는 남성체 말이야.”
“없어.”
윤초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막 하늘에서 이 이상한 곳에 떨어진 참인데 보호자 같은 건 있을 리가 없었다.
윤초원의 대답을 들은 늑대인간은 윤초원을 백호 연맹으로 데려갈 결심을 더 굳혔다.
“아, 나는 진우빈이라고 해. 이름은 뭐야?”
계속 여성체 아니면 당신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했는지 늑대인간이 이름을 물었다.
“윤초원.”
“윤초원...”
진우빈은 이름을 중얼거렸다.
“예쁜 이름이네. 그런데 순수 인간 여성체는 기력 레벨이 없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나를 진정시켰지?”
진우빈은 이제야 깨달은 듯 윤초원을 바라보았다.
‘기력 레벨?’
윤초원은 방금 받은 신규 선물 패키지를 떠올렸다.
‘거기에 기력 레벨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나?’
윤초원은 가슴 속의 뜨거운 느낌을 집중해 느껴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기력 레벨의 흐름에 따라 살랑거렸고 주변 식물들도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거?”
윤초원은 진우빈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진짜 기력 레벨이 있잖아! 비록 최하위 등급이지만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야! 기력 레벨을 가진 순수 인간은 처음 봤어!”
늑대인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초원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응, 방금 네가 폭주해서 쫓아올 때 발견했어.”
윤초원은 대충 둘러댔다.
“전에는 없었어?”
진우빈은 윤초원의 대답을 듣고 다시 물었다.
“응, 전에는 느껴본 적 없어.”
윤초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다들 순수 인간은 기력 레벨이 없다고 한데다 내가 가진 기력 레벨이 미약해서 못 느낀 걸지도.”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너는 내가 본 최초의 기력 레벨 있는 순수 인간이야.”
진우빈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바보처럼 웃었다.
진우빈의 웃음을 보며 윤초원은 의아해했다.
‘수인은 다들 사고방식이 이렇게 단순한가? 심지어 나를 의심하지도 않는다니.’
두 사람은 또 한참을 걸었다. 윤초원은 확실히 지쳐가는 게 느껴졌다.
원래 세계에서 윤초원은 외출 시 항상 차를 타거나 운전했으며 이렇게 오래 걸어본 적이 없었다.
“윤초원 아가씨, 괜찮으면 내가 업어 줄까?”
진우빈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윤초원을 바라보았다.
‘기력 레벨까지 있는 순수 인간 여성체면서 다른 여성체들처럼 거만하지 않다니.’
진우빈은 정말 이 여성체가 마음에 들었다.
‘너무 귀여워!’
“좋아.”
윤초원은 확실히 지쳐 있었다. 이미 30분 넘게 걸었으니 체력이 바닥났다.
하늘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온몸이 아픈데 이렇게 오래 걸으니 몸이 버티질 못했다.
진우빈은 윤초원이 허락하자 바로 쪼그려 앉았다. 윤초원도 주저하지 않고 그의 등에 올라탔다.
진우빈은 윤초원을 업고 나서 확실히 속도가 빨라졌다.
윤초원은 처음엔 그저 진우빈의 등에 기대어 눈을 감고 쉬려 했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윤초원은 깔끔하게 정리된 방 안에 있었다. 일인 병실 같은 느낌이었다.
마침 흰 가운을 입은 동물 귀가 달린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깨셨군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여긴 어디죠?”
윤초원은 긴장한 듯 남성을 바라보았다.